LH 등서 지원받아 자금 있는데도
에어컨 갖춘 고시원들은 입주 거절
창문 없는 방서 혹독한 여름나기
장애인은 반지하도 구하기 힘들어
SH 주거상담 과반이 60대 이상
“직접 매물 구하는 전세지원보다
매입임대주택 노인 공급 늘려야”
기초생활수급자인 김모(65)씨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고시원에서 3년째 살고 있다. 김씨가 묵고 있는 방은 0.8평(약 2.64㎡) 남짓. 침대와 책상을 두면 꽉 차는 크기다. 에어컨은커녕 창문조차 없어 여름엔 방 온도가 33도까지 올라간다. “열대야가 찾아오는 여름 밤이 무서워 울고 싶을 정도”라고 김씨는 말했다. 이 고시원에는 40여 명이 거주하는데,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은 2개씩뿐이다.
김씨와 같은 고시원에 묵고 있는 A씨는 “방에 누워 있으면 바퀴벌레가 몸으로 떨어질 정도로 벌레가 많아서 살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김씨는 “방이 너무 좁다 보니 움직이지 않게 돼 병세가 악화되는 것 같다”며 “조금이라도 넓은 원룸으로 이사가는 게 소망”이라고 했다.
김씨가 이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세 보증금이 없어서가 아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 보증금을 최대 1억3000만원 지원해주는 전세임대주택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매물을 보기도 전에 독거노인이라는 이유로 계약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송모씨는 “노인들이 다치거나, 고독사할 경우를 우려해 임대인들이 노인과 계약을 꺼린다”며 “심한 경우 임차인의 얼굴을 보고 ‘나이가 너무 많다. 젊은 사람과 계약하고 싶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대문구에 있는 한 다가구주택 전세 매물정보에는 “연세가 너무 많은 분은 안 됩니다”라고 쓰여 있다. 지경숙 서울 서대문구 주거상담소 소장은 “고령자의 주택을 물색해주다가 ‘시체 치울 일 있냐’는 말까지 들어봤다”며 “월세나 전세 보증금이 충분히 있거나, 국가 지원을 받아도 고독사 문제 등으로 인해 계약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국 부동산시장에서 밀려난 독거노인은 임시 거주 시설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시설에 묵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고시원에서조차 입주인 나이와 신분을 따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2024년 에어컨이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방마다 있는 길 건너편 고시원에 들어가려고 했다. 월세가 10만원 더 비쌌지만 주거급여로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전화했을 때 ‘방이 있다’고 했던 고시원 주인은 김씨를 보자마자 “여긴 학생이나 직장인만 받는다”며 손사래쳤다. 김씨가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고선 “여기는 2층이라 위험해서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고령이면서 정신장애까지 앓고 있는 이모(67)씨도 지난해 LH 전세임대주택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임대인에게 10여차례 거절당하며 지원 기한 내 집을 구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임대인들은 이씨가 중증 정신장애인이라는 것을 듣자마자 계약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씨는 디딤돌주택이 제공하는 임시 거주 시설의 계약을 최대로 연장, 15일 퇴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씨는 올해 다시 저소득 중증장애인 지원사업에 선정돼 지난달 7일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공인중개사는 “전세는 (장애인이 아닌) 일반 세입자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또 다른 중개사로부터 중증 장애인이 살던 반지하 매물을 소개받았지만, 중개사는 “이 매물을 보는 다른 장애인이 있는데, 집주인은 아무래도 장애가 덜 심한 그분과 계약을 우선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씨의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된 사회복지사들은 임대인을 수차례 설득한 끝에 퇴거를 보름 앞둔 지난달 30일 이씨가 살 전셋집을 가까스로 구했다. 복지사들은 “지난해에는 이씨 상태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러다 보니 집을 구하기 어려워 올해는 이씨가 정신장애인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금전 관리 같은 게 부족한 분이라고만 설명했다”며 “임대인들이 입주자의 나이와 질병 여부 등을 확인하는데 몇 차례씩 계약을 거절당한 분들은 결국 재개발 직전이라 천장에 구멍이 뚫린 곳에 입주하기도 한다”고 했다.
SH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인 서울시 내 9개 주거상담소의 3년간 주거 상담 인원을 보면, 10대 이하부터 80대까지 전체 상담 인원 17만3933명 중 60대 이상 인원이 절반 이상(57.2%, 9만9435명)이다. 고령일수록 주택 물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10월 서울시 전역을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묶는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등으로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가 강화되면서 나타난 ‘전세난’이 취약계층의 주거 불안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매물이 많지 않으니 조건이 좋고 발 빠른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집을 구하기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LH가 직접 매입해 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공급물량이 한정적이라 수요를 감당하긴 어렵다.
매입임대주택 중 고령자 맞춤형 공급 비율이 턱없이 적다는 점도 지적된다. 올해 3월 LH는 매입임대주택 총 2만5730호의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는데, 이 중 고령자 맞춤형 공급량은 다가구 공급 물량(1만6439호)의 0.78%(50호) 남짓이다. 청년(19.5%, 3200호), 신혼부부 1·2유형(31.5%, 5171호)에 비해 턱없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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