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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무너졌던 MP3 명가 ‘아이리버’…과연 전략적 오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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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기자·방승민 인턴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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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 한때 연매출 4000억원 넘어
소니·애플 상대 도발 광고도

‘아이리버’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흔하지 않던 시절, MP3 플레이어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던 기업이었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MP3-CD 플레이어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며 호령했고, 한때 연 매출 4000억원을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잘 나갔던 아이리버의 아성이 무너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리버’의 브랜드 필름 영상에 등장하는 옛 아이리버 기기. 아이리버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캡처
‘아이리버’의 브랜드 필름 영상에 등장하는 옛 아이리버 기기. 아이리버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캡처

2005년부터 적자의 늪에 빠진 아이리버는 이듬해 500억원대의 손실을 기록하며 급격히 쇠퇴했고,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멀어졌다. 당대 스타 배우 유승호와 가수 아이비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며 잘 나가던 아이리버는 왜 한순간에 몰락했을까? 어떤 시장 환경을 마주했고, 전략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던 걸까.

 

◆ 전설의 태동…연 매출 4500억의 시대

 

아이리버는 1999년 삼성전자 임원이었던 양덕준 대표가 자본금 3억원을 가지고 직원 7명과 함께 당시 사명 ‘레인콤(2009년 아이리버로 사명 변경)’으로 창업했다. 2000년 다양한 파일 형식을 재생할 수 있는 콤팩트디스크(CD) 플레이어 ‘iMP-100’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이듬해에는 세계 MP3-CD 플레이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이후 승승장구로 2004년에는 약 4500억원 규모의 매출을 내면서, 2000년대 초반 아이리버는 최전성기를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아이리버가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강점은 기술력이었다. 디자인과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췄지만, 휴대용 디지털 오디오 기기를 안정적으로 구현해 낸 하드웨어 기술이 더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한국의 IT 인프라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MP3 기술 자체는 이미 존재했지만, 대중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상용화한 기업은 많지 않았다. 당시 컴퓨터 환경이 CD 중심에서 MP3 파일 기반으로 빠르게 전환되며 음원을 압축·저장·관리하는 기술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고, 아이리버는 이 흐름에 맞춰 ‘들고 다닐 수 있는 음악 기기’를 적시에 내놓았다. 시대의 변화와 기술 구현이 맞물린 결과였다는 의미다.

 

양석준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MP3 플레이어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음악 파일을 빠르게 전송하고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인데, 한국은 1999년 말부터 초고속 인터넷이 본격 보급되기 시작했다”며 “아이리버는 인터넷 인프라를 빠르게 경험한 덕에 어떤 제품을 우선 개발해야 하는지 선구안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리버’의 브랜드 필름 영상에 등장하는 옛 아이리버 기기. 아이리버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캡처
‘아이리버’의 브랜드 필름 영상에 등장하는 옛 아이리버 기기. 아이리버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캡처

 

◆ 광고로 해외 기업들을 도발하다

 

“Sorry SONY!”, “소니야 미안해!” 라는 광고가 화제였던 적 있다. 아이리버가 내놓았던 일본의 전자제품 제조 기업 소니를 도발하는 광고였다.

 

‘워크맨 신화’를 이뤄냈던 세계 최대 휴대용 오디오 기업 ‘소니’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던 셈이다. 소니가 디지털 중심으로 변해가던 시장 흐름 속에서도 자국 규격 ‘MD(미니디스크)’ 표준화에 열중하면서 아이리버가 소니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던 시기였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아이리버는 ‘차별화’와 ‘제품력’으로 소니의 아성을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심지어 2004년에는 모델이 사과를 베어 무는 모습을 연출한 광고를 내 ‘애플’을 도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아니고, 중견기업도 아닌 벤처기업의 세계적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도발이었다. 성과를 기반으로 한 자신감이었다.

 

당시 아이리버는 2001년을 기준으로 미국시장 진출 6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상태였다. 2003년에는 매출액 20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2001년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했을 당시 스티브 잡스는 유일한 라이벌로 아이리버를 지목했다는 관련 보도도 있었다.

 

◆ ‘몰락’의 시작…삼성과의 MP3 경쟁까지

 

아이리버의 하락세는 애플 이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2005년을 전후해 삼성전자가 ‘YEPP’ 브랜드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경쟁 구도가 변했다. 삼성전자는 대규모 자본력과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품을 빠르게 출시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아이리버도 기술력과 완성도 면에서는 뒤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비용 구조였다. 중소기업이었던 아이리버와 달리 삼성전자는 부품 조달과 생산, 유통 전반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이리버는 가격 경쟁과 제품 라인업 확장 측면에서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다만 이 경쟁의 결과는 아이리버만의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도 이후 MP3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팟과 정면 승부를 벌였지만, 결국 플랫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같은 한계에 부딪혔다.

 

가상의 MP3 기기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가상의 MP3 기기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 ‘스마트폰’과 ‘아이튠즈 플랫폼 생태계’의 등장

 

아이리버의 위기를 결정적으로 가속화한 요인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플랫폼 중심 시장으로의 전환이었다. 애플은 아이팟을 넘어 아이튠즈라는 음악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며, 단순한 하드웨어 경쟁을 생태계 경쟁으로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아이리버가 플랫폼을 구축하지 못한 점은 흔히 전략 실패로 지적된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에 가까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 교수는 “플랫폼 구축에는 막대한 서버 비용과 저작권 관리, 법적 리스크가 수반되는데, 이는 아이리버와 같은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엔 어려운 영역이었다”고 분석했다. 아이리버가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의사 결정을 했더라도 실제로 착수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실패, 그래도 단순한 실패는 아니었으리라

 

아이리버가 시장 변화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음악 재생 기능에 화면을 결합한 PMP, 전자사전, 전자책 단말기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이 역시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는 못했다. PMP는 스마트폰이 빠르게 대체해 나간 영역이었고, 새로운 사업 대부분이 기존 하드웨어 경쟁의 연장선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플랫폼이나 생태계로 확장되지 못한 다각화는 장기적인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결국 아이리버의 사업 다각화는 ‘시간을 벌기 위한 대응’에 가까웠고,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아이리버’의 브랜드 필름 영상에 등장하는 아이리버 로고. 아이리버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캡처
‘아이리버’의 브랜드 필름 영상에 등장하는 아이리버 로고. 아이리버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캡처

 

아이리버의 실패는 단순히 플랫폼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플랫폼의 중요성을 인식했더라도, 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자본과 구조가 부재했다는 점이 보다 근본적인 한계로 지목된다.

 

양 교수는 “플랫폼 구축은 대기업조차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구축하는 영역”이라며 “기술 경쟁에서 성공한 중소기업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본 시장과 투자 생태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결국 아이리버의 한계는 개별 기업의 전략적 판단 오류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기술 기업이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필요한 자본과 제도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던 당시 산업 구조의 한계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가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 기업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사다리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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