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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내 운명의 주인은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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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발디와 나’(다미아노 미키엘레토, 2025)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작품의 원제는 ‘프리마베라(primavera)’, 즉 ‘봄’이다. 바로크 음악의 거장인 안토니오 비발디의 대표작 ‘사계’의 첫 번째 곡이자 ‘사계’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봄’을 제목으로 뽑은 영화인 것이다. 비발디를 극화한 영화의 제목을 그의 대표작에서 따왔다는 것은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봄’이라는 제목은 그 당연함 뒤에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미키엘레토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긴 겨울 끝에 깨어나는 두 영혼의 만남”이라고 설명한다. 두 영혼.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비발디라는 주인공 외에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는 얘기다. 비발디라는 거장의 영혼과 접속한 또 하나의 주인공, 바로 ‘체칠리아’라는 여성 음악인이다.

무대는 18세기 초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원의 음악원이다. 병약한 가톨릭 사제였던 비발디는 피에타 고아원 소속 음악원의 음악 선생으로 부임한다.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 하에 오케스트라로 명성을 떨치던 피에타 고아원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비발디를 음악 선생으로 영입한다. 비발디에게 피에타 고아원은 작곡가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원 없이 펼칠 수 있는 꿈의 직장이다. 이곳에서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 체칠리아를 만난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이곳의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이 고아들인 이곳의 여성 음악인들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낼 수 없었고 후원자들의 간택에 따른 결혼 외에는 수도원을 벗어날 수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녀들의 실상이 어떠했는지는 영화의 도입부 장면에서 잘 그려진다. 영화의 주인공 체칠리아는 그런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비발디와의 만남은 자신의 과거와 희망 없는 미래에 고통받던 체칠리아에게 음악을 향한 열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고 그녀는 음악을 위해서라면 모든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이것은 남성 마스터의 도움으로 꿈을 이루는 소녀에 관한 뻔한 성장담이 아니다. 그녀는 정략결혼을 거부한 대가로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 했지만, 깊은 상해를 감수하고서 고아원을 탈출한다. 물론 바깥세상 역시 그녀에게 아무것도 약속해 주지 않는다. 그곳 역시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거칠고 차가운 세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거칠고 망망한 자유의 바다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피에타 고아원 시기는 비발디가 가장 창의적인 작품들을 발표한 시기이다. 그의 대표작 ‘사계’뿐 아니라 ‘유디트의 승리’ 역시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사계’는 이 영화의 서사 진행에서 그다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정작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음악은 ‘유디트의 승리’이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전쟁 서사. 많은 예술 작품에서 적장을 유인해 목을 친 유디트를 팜므파탈로 묘사해 왔지만 비발디는 이 서사극을 오로지 여성들의 목소리와 연주를 통해 유디트라는 여성 영웅에 헌정하는 오라토리오로 완성한다. 여기서 유디트와 체칠리아는 만난다. 비발디의 현란한 음악과 바로크 시대의 미장센이 화려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무명의 여성 음악인이 자기 운명의 영웅으로 일어서는 영화. 상처는 깊지만 그녀는 앞으로 나아간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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