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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태어날 자격을 갖는가… 우생학이 던진 원초적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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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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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문제/ 에릭 L 피터슨/ 김하현 옮김/ 낮은산/ 2만1000원

 

유전자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우생학은 동물에 효과를 내는데, 왜 인간에게는 아니겠는가”라고 말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했을 때, 두 발언은 전혀 다른 차원에 놓인 듯 보인다. 그러나 ‘태어나는 문제’는 이들이 공유하는 동일한 전제를 파고든다. 인간을 유전적 기준으로 선별해 사회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미국 앨라배마대학교 과학사 및 의학사 부교수인 저자는 우생학을 나치의 광기나 일탈적 과학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시인 테오그니스가 “도시인의 혈통이 약해지고 있다”고 개탄했고, 플라톤은 선별적 번식에 관한 논의를 펼쳤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랜시스 골턴의 이론을 거쳐 20세기 미국과 유럽의 정책으로 이어졌다. 책은 시대별 옹호자들의 전기를 중심으로, 변화무쌍한 우생학의 개념을 전개한다. 2500년의 역사를 간결한 서사로 엮어냈고, 추상적 개념 대신 인물의 선택과 판단을 따라가게 해 쉽게 읽을 수 있다.

에릭 L 피터슨/ 김하현 옮김/ 낮은산/ 2만1000원
에릭 L 피터슨/ 김하현 옮김/ 낮은산/ 2만1000원

주목할 점은 우생학이 ‘좋은’ 형질을 번식시키려는 비교적 온건한 시도에서 ‘나쁜’ 것으로 간주되는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로 기울어갔다는 사실이다. 장애인 학살로 이어진 나치 독일의 사례는 그 극단이지만, 저자는 그 뿌리가 영국과 미국의 학문·제도적 토양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음을 강조한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길은 뉴욕 우생학기록사무소를 거쳐갔다”는 지적은 이 역사가 특정 국가만의 광기가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오늘날 우생학은 더는 국가 주도의 강제 정책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유전자 검사와 생명공학 기술을 통한 개인의 ‘합리적 결정’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이른바 ‘벨벳 우생학’이다. 어떤 삶은 태어나도 되는가, 어떤 삶은 그렇지 않은가. 이러한 판단이 개입되는 지점에서, 배제는 오히려 더 정교해졌다.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 특정 생명을 배제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순간, 우생학은 가장 부드러운 얼굴로 다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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