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원래 차갑지 않았다/ 루이지노 브루니/ 이가람 외 6명 옮김/ 북돋움/ 2만2000원
“시장은 본래 냉혹한 거래의 장이 아니라 인간적 우애와 상호성의 온기 위에서 태동했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가 쓴 ‘시장은 원래 차갑지 않았다’는 이 같은 명제를 중세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통해 증명한다. 시민경제학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는 중세 시장 문명의 태동부터 애덤 스미스, 18세기 나폴리 경제학파를 거쳐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경제사상의 흐름을 추적하며, 시장의 출발점이 계산이 아니라 ‘관계’였음을 복원한다.
인류 최초의 교환은 물물교환이 아니라 ‘증여’, 즉 선물 주고받기였다. 경제적 계산 이전에 존재했던 것은 신뢰였고, 거래는 관계의 연장선이었다. 시장은 낯선 사람과도 관계를 맺기 위한 장치로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처음부터 익명성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재편된다. 애덤 스미스 이후 주류 경제학은 인간을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시장에서 ‘관계’와 ‘감정’을 제거했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사회 전체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보이지 않는 손’ 논리는 시장을 효율적인 공간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간을 고립시켰다. 누구와도 거래할 수 있지만 누구와도 깊이 연결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얻었지만 공동체적 유대는 약화됐다. 책은 오늘날 시장 속 불안과 불행의 원인을 ‘관계의 상실’에서 찾는다. 저자는 “자유와 평등은 있지만 형제애는 없다”는 한 문장으로 근대 시장의 민낯을 압축한다. 개인은 더 자유로워진 만큼 더 고립된 존재가 된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시민경제’다. 이는 시장을 단순한 이익 교환의 장이 아니라 상호부조와 신뢰가 형성되는 공간으로 다시 이해하려는 시도다. 그는 고대 ‘필리아(philia)’와 ‘아가페(agape)’를 경제의 핵심 요소로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활동 역시 인간 관계의 일부이며, 관계적 가치가 시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18세기 나폴리의 시민경제 전통에서도 확인된다. 안토니오 제노베시는 시장을 ‘서로에게 유익한 행위’로 해석하며, 개인의 상업 활동이 공동체 전체의 선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이때 시장은 경쟁의 장이 아니라 협력의 장이 된다.
저자는 특히 ‘관계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뢰와 협력은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그것이 무너지면 시장 역시 유지될 수 없다. 단기적 이익만을 좇는 행동은 장기적으로 시장의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계는 경제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다.
책은 결국 시장을 다시 인간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시장은 추상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브루니는 “함께 거래를 해야 한다면 케이크를 나누는 것보다 키우는 데 집중하라”고 말하며, 신뢰와 협력의 장기적 가치를 강조한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헌혈 한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26/128/20260426510497.jpg
)
![[특파원리포트] 대만해협에 출몰한 ‘시모노세키 망령’](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26/128/20260426510505.jpg
)
![[구정우칼럼] 늑구의 귀환에 안도할 수 없는 이유](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26/128/20260426510480.jpg
)
![[심호섭의전쟁이야기] 설마리 전투의 전술적 패배와 작전적 승리](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26/128/20260426510485.jpg
)






![[포토] 장원영 '뒤태도 자신 있어요!'](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24/300/20260424502527.jpg
)
![[포토] 박보검 '심쿵'](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24/300/20260424502538.jpg
)
![[포토] 김고은 '해맑은 미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24/300/2026042450255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