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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독립 설계자’ 제퍼슨의 리더십을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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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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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철학자 아닌 정치가로 해석
필요 따라 원칙 꺾은 실용주의와
냉철한 현실주의자적 면모 ‘조명’

자유·평등 주장하며 노예 소유해
사상·현실사이 ‘모순’ 드러내기도

국가 설계 과정 속 결단력·유연함
모든 지도자에 ‘권력의 기술’ 전수

토머스 제퍼슨/ 존 미첨/ 원희래·유영분 옮김/ 21세기북스/ 6만1000원

 

렘브란트 필의 작품인 ‘제퍼슨 1800’. 제퍼슨의 초상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백악관역사협회의 공식 초상화로 소개되고 있다. 위키미디어 제공
렘브란트 필의 작품인 ‘제퍼슨 1800’. 제퍼슨의 초상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백악관역사협회의 공식 초상화로 소개되고 있다. 위키미디어 제공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대통령 역사학자인 존 미첨이 미국 건국의 핵심 인물이자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의 생애를 다룬 평전이다. 원제가 ‘권력의 기술’인 이 책은 제퍼슨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9부 43장에 걸쳐 차분히 추적한다. 이 평전이 돋보이는 이유는 제퍼슨을 단순한 ‘권력을 경계한 사상가’가 아니라, 권력의 본질을 이해하고 능숙하게 활용했던 정치가로 재해석했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자유의 철학자’라는 상징적 이미지 뒤에 가려진 제퍼슨의 정치적 감각과 권력 운용 능력을 전면에 부각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그가 추상적 이상에 머문 인물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제약 속에서 전략과 타협을 병행했던 냉철한 현실주의자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존 미첨/ 원희래·유영분 옮김/ 21세기북스/ 6만1000원
존 미첨/ 원희래·유영분 옮김/ 21세기북스/ 6만1000원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독립선언서 채택 작성 과정이다. 제퍼슨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을 통해 보편적 자유의 원칙을 천명했지만, 이 문장은 순수한 철학적 선언만이 아니라 정치적 협상의 결과이기도 했다. 초안에 포함됐던 노예제 비판이 남부 식민지의 반발로 삭제된 사실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가 감수해야 했던 타협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또 다른 중요한 장면은 루이지애나 매입이다. “생도맹그(아이티)의 노예 반란 패배와 영국과의 전쟁 임박으로 자원 관리가 필요해진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 전체를 매각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이 순간, 엄격한 헌법 해석주의자였던 제퍼슨은 ‘영토 매입’이라는 헌법에 없는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당초 그는 헌법 개정이 필수라고 생각했으나, 조약 비준이 지연될 경우 프랑스가 변심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게 된다. 여기서 제퍼슨의 실용주의가 빛을 발했다. 그는 이론이 현실의 걸림돌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고, 헌법 개정 절차를 과감히 건너뛰었다. 그는 이 결단을 ‘중요한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피후견인의 돈을 투자한 후견인’에 비유하며, 훗날 국민의 관용과 승인을 얻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나아가 의회를 향해 헌법적 난제에 대한 토론을 최소화하고 신속히 조약을 비준할 것을 압박하여, 불가능에 가까웠던 거대한 영토 확장을 현실로 만들어냈다.”(493쪽)

 

당시 프랑스를 이끌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아이티 혁명과 대외 전쟁 부담 속에서 루이지애나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제퍼슨은 헌법에 없는 ‘영토 매입’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원칙적으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았지만, 기회를 놓칠 경우 국가적 손실이 크다는 판단 아래 그는 조약 비준을 밀어붙였다.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미국 영토를 두 배 이상 확장했다. 이는 그가 원칙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황에 따라 과감한 선택을 할 줄 아는 지도자였음을 보여준다.

정치적 갈등 관리에서도 그의 특징은 분명하다.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과의 대립은 단순한 개인적 경쟁이 아니라 국가의 방향성을 둘러싼 이념 충돌이었다. 해밀턴이 강력한 중앙정부와 금융 체제를 강조한 반면, 제퍼슨은 농업 중심의 공화국과 주 권한을 중시했다. 그는 공개 충돌보다는 서신과 비공식 네트워크를 활용해 여론을 형성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갈등을 ‘파괴’가 아닌 ‘조정 가능한 긴장’으로 다루는 정치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위대한 업적만이 아니다. 제퍼슨은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평생 노예를 소유했던 인물이었으며, 그의 저택 몬티첼로에서는 수백 명의 노예가 노동에 종사했다. 이러한 모순은 사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도덕적 비난으로 소비하지 않고, 당시 사회 구조 속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회피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결국 이 평전은 제퍼슨을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복합적인 인간’으로 복원한다. 미국 독립혁명 이후 새로운 국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유연성과 결단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통찰을 제공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던 그의 고민은, 권력을 다루는 모든 시대의 지도자들이 마주하는 본질적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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