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가족 최소 19명 숨져
故 권순범군 母 최지영씨
“4월만 되면 ‘한포진’으로 고생
매일 노숙농성… 대장 일부 절제”
20%가 ‘심각한 신체증상’ 호소
생존자 장애진씨 父 장동원씨
참사수습에 외상 고통 만성화
“생존학생 부모 꼬리표에 부담
시력 잃고 우울… 성한 곳 없어”
9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피해자 고(故) 권순범군의 모친 최지영(62)씨가 말했다. 권군이 참사 당시 속해 있던 2학년6반 희생자 25명의 가정에서만 최소 5명의 부모들이 생사를 달리했다는 게 최씨의 증언이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피해자들의 증언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참사가 발생한 지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2014년 5월 설립돼 세월호 참사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 가족 등을 지원해 온 안산마음건강센터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이후 숨진 희생자 가족은 최소 1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원인은 간암, 폐암, 대장암, 편도암, 림프종, 담도암, 유방암 등 각종 암 11명, 당뇨 합병증 2명, 원인 미상(서비스 거부) 1명이다. 5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과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이들이 참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전문가들은 참사 발생 초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참사 수습과 진상 규명 등으로 인한 부담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외상 후 고통이 만성화하거나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살아있다는 미안함에… 하루하루 술로, 약으로 버티다
안산마음건강센터와 이원영 중앙대 의과대학 교수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일반인에 비해 더 악화된 신체건강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수 안산마음건강센터 센터장은 “참사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 환자들에게는 지속적 독성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암을 포함한 다양한 신체질환이 발병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최근 2∼3년 사이에도 6반 부모 중 3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304명의 목숨이 스러진 그날의 기억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참사 직후 희생자에게 미안해서, 진상 규명에 대한 책임감으로 돌보지 못했던 몸은 뒤늦게 통증을 느꼈다.
최씨는 2년 전 처음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 우울증 약은 3∼4년째 먹고 있지만 공황장애는 처음이었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공포심에 일주일 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매년 4월만 되면 손바닥 전체에 물집이 생겨 퉁퉁 붓고 피부병이 생긴 듯 온몸이 간지러웠다.
세월호피해지원법(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2029년 4월15일까지 피해자와 가족에게 의료지원금을 지원하도록 돼 있지만 병원은 최씨의 한포진이 참사와 관련이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아니라고 하면 속상해요. 50세가 넘도록 피부에 여드름 하나 안 났는데 4월만 되면, 가슴이 아플 때만 피부병이 올라오는데 어떻게 세월호 때문이 아니야.” 최씨가 말했다. 최씨는 노숙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대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도 받았다.
통증은 매번 다르게, 갑자기 왔다. 주변엔 쓸개를 떼어낸 엄마도, 자궁을 다 들어낸 엄마도 있었다.
생존자 장애진씨의 아버지 장동원(56)씨는 참사 11주기가 지난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정신과에 내원했다. 참사 직후 “딸이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잠시, ‘생존학생 부모’라는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다. “아빠도 진상 규명 할 거지?” 참사 후 학교를 나가지 않고 자꾸 숨으려 하는 딸이 물었다. 그는 “힘닿는 데까지 유족들과 함께할게”라고 답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사 직후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를 맡았던 그는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족협)에서 진상 규명 팀장, 사무처 팀장에 이어 총괄팀장이라는 직책을 달았다. 주말 한 번 쉬지 않고 빠짐없이 전국을 오갔다.
쉼 없이 달려온 그가 이상증상을 느끼기 시작한 건 불과 1년 전부터였다. 참사 후 습관처럼 매일 마시던 막걸리 두 병과 시간이 없어 진통제로만 버티던 통증이 몸을 축냈다. 70㎏ 안팎이던 몸무게가 62㎏까지 줄었다. 췌장까지 염증이 번져 병원에 입원했고 협심증 진단을 받았다.
몸이 회복되니 마음이 아팠다. 말이 어눌해지고 누군가 질문하면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신과에선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는 “너무 많이 울었던 탓인지 왼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회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고립돼 있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유가족은 더욱 높은 위기에 놓여 있다. 가족협 관계자는 “알코올 문제를 겪거나 칩거하는 분들도 많다”며 “상담이나 치료를 받게 하려고 설득해 봤지만 집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참사 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안산마음건강센터가 지난해 공개한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건강 및 생활 실태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참사 10주기였던 2024년 설문에 응답한 피해자·유가족 379명 중 71명이 ‘심각한 신체증상’을 호소했다. 유가족이 치료를 받고 있는 질환으로는 고혈압이 가장 많았고 △불면증 △잇몸질환 △당뇨병 △위·십이지장궤양 △우울증 △관절염 △류머티즘 순으로 높은 빈도를 보였다.
생존자의 경우 심각한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30.6%(49명 중 15명)로, 2017년 22.8%(57명 중 13명), 2021년 22.2%(54명 중 12명)에 비해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유가족 10명 중 3명 이상은 참사 후 신체질환으로 수술까지 받았다. 유가족 중 34.1%(98명)는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동안 신체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7∼10년차에 수술을 받았다는 응답률이 절반(50%)을 차지했다. 근골격계 수술이 가장 많았고, 악성 양성 종양, 소화기계 수술이 뒤를 이었다. 정신건강 문제도 지속됐다. 유가족 289명 중 137명(47.4%)은 2024년에도 장기간 울분으로 인한 고통 또는 장애, 심한장애 상태를 보였다. 93명(32.2%)은 외상 후 스트레스 위험 수준, 111명(38.4%)은 우울증 임상적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나빈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 부원장은 “참사 후 소송이나 진상 규명, 수습 등 당장 해결해야 할 긴박한 문제들에 대해 몸과 마음이 생존 모드로 대응하느라 고통조차 차단하기도 한다”며 “어느 순간 에너지가 고갈되는데 긴 세월 동안 과도하게 긴장된 상태로 유지하다가 소진되는 순간 눌려왔던 증상들이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으로 터져나올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2017년 유가족 중 83.3%(199명)는 ‘심리상태에 대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고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 ‘진상 규명 등이 우선이며 치료를 받을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31.4%(70명)였다. 해당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2021년 17.2%(64명), 2024년 11.5%(38명)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백명재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참사 진상 규명 등이 오래 걸렸고, 온라인상 2차 가해 등 2차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된 게 후유증 장기화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며 “트라우마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고혈압, 당뇨 위험성이 올라간다. 다른 나라 연구를 보면 치주질환, 피부질환을 겪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참사 후유증은 정신질환을 넘어 피부질환, 심혈관계 질환, 암 등 구체적인 신체질환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산마음건강센터가 관리하는 대상자는 희생자의 직계가족, 배우자, 형제자매 등을 포함한 ‘희생자 유가족’ 782명,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 208명, 간접피해자 31명으로 총 1021명이다. 센터가 관리하지 않는 생존자도 100여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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