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마약왕’으로 불리는 박왕열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정작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마약 폐해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국경 밖에서, 심지어 감옥 안에서도 마약 범죄 조직은 작동한다. 물리적 제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기술과 네트워크의 결합은 범죄 공간의 한계를 무력화하고 있다.
과거 마약 거래는 위험을 전제로 한 대면 구조였다. 공급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야 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접근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텔레그램 채널에는 마약 종류와 가격이 ‘상품 목록’처럼 올라오고, 주문은 메시지 몇 번이면 끝난다. 결제는 대포계좌나 가상자산으로 이뤄지고, 전달은 특정 장소의 사진을 찍어주는 ‘던지기’ 방식이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마주칠 필요가 없다.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이 같은 변화는 범죄의 성격 자체를 바꿔놓았다. 오늘날 마약 유통은 총책, 중간 관리자, 전달책, 자금 세탁 담당으로 역할이 분업화되어 있다. 총책은 거래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일부 연결고리가 끊어져도 전체 조직은 유지된다. 여기에 자동 응답 프로그램과 다중 계정 운영이 결합하면서 조직은 일종의 ‘플랫폼’처럼 작동한다. 채널이 차단되면 즉시 다른 채널로 이동하고, 계정이 폐쇄되면 대체 계정으로 전환되는 등 범죄는 점점 시스템화되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이러한 구조가 계속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 기반 자동 응대는 주문과 고객 관리를 무인화하고, 가상자산은 자금 흐름을 다층적으로 분산시켜 추적을 어렵게 만든다. 드론이나 정밀 위치 기반 기술을 활용한 전달 방식까지 거론된다. 거래 자체가 비대면·자동화·분산형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단속은 더욱더 어려워지게 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요다. 최근 한국의 마약 범죄는 특정 집단이 아니라 일반 시민, 특히 20∼30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한다. 대학가, 유흥가,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거래 정보가 공유되고, ‘한 번쯤은 괜찮다’는 인식이 퍼진다. 접근성이 낮아진 시장과 완화된 심리적 장벽이 결합하면서 마약은 점점 일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날 미국이 직면한 ‘오피오이드(opioid crisis) 사태’는 마약이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국가적 리스크가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피오이드는 원래 암 환자나 중증 통증 치료에 쓰이던 강력한 진통제였지만, 1990년대 이후 과잉 처방과 오남용이 중독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더 강력한 합성 마약인 펜타닐 등이 유입되면서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함께 노동시장 이탈, 지역 공동체 붕괴, 막대한 의료·복지 비용 증가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 역시 가볍지 않다. 대응 방향은 분명하다. 마약 범죄의 동력인 자금줄을 가상 계좌와 자산까지 끝까지 추적해 ‘남는 장사’가 되지 못하게 하고, 텔레그램·다크웹 등 온라인 유통망 잠입 수사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비대면 거래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 동시에 해외 공급망의 원천 차단을 위한 국제 공조와 생활권 확산 경로에 대한 집중 단속을 병행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치료·재활과 예방 교육, 재범 관리 강화를 통해 시장의 재생산을 억제해야 한다. 과거 ‘범죄와의 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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