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에 탱화 ·민화 등 뒤섞어 구현
박찬욱 동생… 영화 연출로 두각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어느 날, 당나라 선승 구지는 한 비구니로부터 이 같은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이때 자신의 공부가 비구니보다 못한 데 대해 자괴감을 느꼈다. 이에 자신의 스승 천룡이 처소에 찾아오자, 그는 비구니에게 받은 물음을 똑같이 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스승 천룡은 바른손을 쑥 내밀어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였다. 그 순간, 구지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는 이후 누가 무엇을 묻든 간에 자신의 엄지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부재 중에 절에 있던 동자가 선사의 법을 묻는 사람에게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구지는 동자의 손가락을 칼로 베어버렸다. 동자가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갈 때, 구지는 동자를 불렀다. 동자가 머리를 돌려 뒤돌아볼 때, 구지는 다시 엄지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였다. 이때 동자 역시 홀연히 진리를 깨달았다.
대표적 선서 ‘무문관’ 제3칙에 담겨 있는 구지 선사의 선 이야기다. 구지가 스승 천룡의 손가락에서 보고 깨달은 진리는 무엇이었고, 손가락을 잘린 동자가 구지 선사가 세워 보이는 손가락을 보고 깨달은 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피가 철철 흐르는 칼을 든 선사, 눈이 뽑혀 고통을 호소하는 듯한 동자승, 그리고 손에 들린 채 피를 흘리는 눈. 잔혹한 서사지만, 화면은 오히려 고요하다.
동자의 손가락을 자르면서까지 깨달음을 가르치려 한 당나라 선승 구지의 이야기가 손가락이 아닌 눈알을 뽑아낸 작품 ‘안구선사’로 거듭났다.
“눈이 뽑히는 설정은 일종의 자기풍자입니다. 한국 문화에는 해학과 풍자의 전통이 강합니다. 특히 민화에는 자기를 낮추고 비트는 태도가 있습니다.”
분단과 냉전, 전통과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사진이나 설치 작품으로 구현해온 미디어 아티스트 겸 영화감독 박찬경이 이번엔 회화를 들고 돌아왔다. 박 작가는 ‘안구선사’를 비롯해 최근 작업한 회화 20여점을 19일부터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막이 오른 개인전 ‘안구선사’에 전시했다. 9년 만의 국제갤러리 복귀전.
전시장에서 만난 박 작가는 “오랫동안 중단했던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됐지만, 미술의 출발이 그림이었기에 나에게 회화는 고향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를 얻기 위해 자기 팔을 잘랐다는 혜가의 고사를 그린 ‘혜가단비도’를 비롯해 사찰 벽화와 조선 민화 등에 담긴 그로테스크함과 숭고함, 판타지, 해학, 풍자 등을 자신만의 탱화나 민화, 만화적 형식을 뒤섞어 구현했다.
그는 “전통이란 ‘문화유산’이나 ‘전통문화’라는 이름 아래 안온하게 고정된 관념이 아니라 무의식처럼 사람들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 있는 것”이라며 “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과 이미지들을 깨우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동생으로도 알려진 그는 2011년 형과 공동 연출한 ‘파란만장’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2014년 SeMA 비엔날레 ‘귀신 간첩 할머니’ 예술감독을 맡는 등 영상 기반 작업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이어왔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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