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우승·폴란드 준우승 이어 다시 정상
흙에서 눈으로…이상호가 써 내려간 ‘반전 드라마’
‘배추보이’ 이상호가 다시 정상에 섰다. 그의 우승은 한국 설상 종목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한계’라는 단어를 지워냈다.
강원도의 산골에서 배추 농사를 도우며 자란 소년. 눈보다 흙이 더 익숙했던 그는 어느새 세계 정상에 서 있는 스노보더가 됐다. ‘배추보이’라는 별명은 그의 출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상호는 22일 독일 빈터베르크에서 열린 2025~2026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 알파인 남자 평행 회전 결승에서 크리스토프 카르네르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상대의 실수로 승부가 갈렸다. 하지만 결승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단순한 행운이 아닌, 치밀하게 쌓아 올린 결과였다.
이번 우승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상호는 예선을 1위로 통과하며 일찌감치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16강에서는 코티 윈터스를 0.56초 차로 제압했고, 8강에서는 올레 미켈 프란틀을 1초 이상 차이로 따돌렸다. 4강에서도 알렉산더 파이어를 꺾으며 결승 문턱을 넘었다.
매 경기마다 이상호가 보여준 건 단순한 속도가 아니었다. 흔들림 없는 레이스 운영과 안정감,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집중력이었다.
이번 시즌 이상호의 성적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 2월 슬로베니아 대회 우승, 3월 폴란드 대회 준우승, 그리고 이번 빈터베르크 우승까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수확하며 그는 월드컵 무대에서 꾸준한 경쟁력을 입증했다. 특히 빈터베르크는 그에게 남다른 무대다. 2024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랐다. 특정 코스에서 반복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건 더이상 우연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실력’의 영역이라는 평가다.
이번 우승으로 이상호는 통산 5번째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한국 스노보드 역사에 전례가 없는 기록이다. FIS 월드컵에서 5승을 달성한 국내 선수는 그가 처음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설상 종목의 새 역사를 썼던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러 고난과 역경, 한계점들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눈이 부족한 환경, 짧은 시즌, 제한된 훈련 인프라. 한국 설상 종목은 늘 ‘불리함’을 안고 출발했다. 그럼에도 이상호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한계를 하나씩 지워왔다. 그의 질주는 개인의 성과를 넘어 한국 설상 스포츠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정상에 올랐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을 향하고 있다.
이상호는 경기 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도 남는 시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응원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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