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중국 가는 사신에게 특별지시 내려
사도세자는 소설 읽고 삽화집도 만들어
낙선재 소장 왕실 소설 83종 2000여 책
조선 왕실 소설은 우리 서사 문학의 정수
스마트폰 없는 밤? 이제는 상상하기 힘들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를 정주행하다 보면, 어느덧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결말은 늘 다음 편을 보게 유혹한다.
조선의 궁궐 밤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손에 들린 것이 소설책이었을 뿐.
왕과 왕비, 숙직하던 관리, 성균관 유생까지 모두 소설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1787년 촉망받던 김조순과 이상황은 숙직을 서며 〈평산냉연〉을 읽다가 정조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 일로 이상황은 소설을 힐난하는 내용의 〈힐패〉를 써서 제출했다. 또 1795년 성균관 유생 이옥은 소설 문체를 썼다는 지적을 받고 정조에게 반성문 격으로 변려문을 지어 올렸다.
왕족이라고 모두 정조 같지는 않았다. 선조는 〈삼국지〉를 좋아했다. 즉위 초 선조는 〈삼국지〉를 인용했다가, 기대승에게 역사와 다르고 의리를 해치니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기대승은 자신도 그 나쁜 소설을 우연히 읽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기대승은 우연치고는 문제작의 문제를 꿰고 있었다. 마치 〈삼국지〉의 매력에 홀렸던 사람처럼.
왕실의 소설 사랑은 꾸준히 이어졌다. 효종과 인선왕후는 〈삼국지〉를 몸소 번역하고 필사했다. 숙종은 〈황명영렬전〉의 번역을 명했고 관련된 한시도 지었다. 영조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소설에서 봤다며 명나라 신종과 이여송이 동서라고 말했고, 〈구운몽〉 작가를 묻기도 했다. 또 1769년 중국으로 가는 사신에게 〈탁록연의〉, 〈남계연담〉을 사 오라고 특별 임무를 내리기도 했다. 사신이 구하지 못했다며 다른 책을 사오자, 1772년 같은 명령이 또 내려졌다. 영조는 재밌는 소설이라면, ‘해외 직구’를 해서라도 꼭 읽었던 가장 성공한 덕후였다.
왕실 소설 가운데 〈손방연의〉는 인장 ‘영빈방’이 찍혀있다. 소설책 주인이 사도세자를 낳은 영빈이씨다. 사도세자 역시 소설 덕후였다. 다만, 그는 아버지와 달리 가장 비극적인 ‘덕후’였다. 사도세자는 널리 읽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사도세자는 화원 김덕성에게 각종 삽화를 베끼게 하고 좋아하는 그림만 골라 책으로 엮었다. 오늘날로 치면 ‘덕질’이었고, 최애 명장면만 모아 ‘굿즈’를 만든 셈이다.
아버지와 갈등 속에 숨이 막힐 때마다 사도세자는 삽화집을 펼쳤다.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는 순간에도 이 삽화집을 곁에 두었다. 소설 내용을 떠올리는 게 위안이 된다며, 삽화집에 서문을 쓴 날은 1762년 윤5월 9일. 뒤주에 갇히기 불과 나흘 전이었다.
정조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정반대였다. 그는 소설에 엄격했다. 나라의 문화를 바로잡겠다는 생각으로, 정조는 신하와 유생을 부단히 단속했다.
열풍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선과 왕실은 말 그대로 소설에 매혹되었다. 정조가 홀로 소설의 해악을 고심하던 와중에도 여동생 청연ㆍ청선군주, 궁녀(훗날 의빈성씨)는 함께 〈곽장양문록〉을 필사했고 그 흔적을 책에 남겼다.
왕실 소설 일부는 순조의 금지옥엽 덕온공주의 혼수로 바깥나들이를 했다. 얄궂은 운명인지 손녀 윤백영은 할머니 덕온공주의 소설책 1000여 권을 들고 다시 입궐했다. 왕실 여성들이 진귀한 소설을 알려달라며 윤백영을 궁으로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왕실 소설은 65년 만에 친정 나들이를 했다. 연경당을 거쳐 낙선재에 갈무리된 왕실 소설은 83종 2000여 책에 달했다. 왕실 소설이 주축이 된 낙선재는 왕비의 한글 도서관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왕실 소설은 수 종이 유실되었고, 이후 험난한 현대사를 겪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은 김일성의 비밀 지령을 받아, 낙선재에 있던 왕실 소설을 포장까지 마친 상태였다. 다행히 인천상륙작전으로 급히 퇴각했고, 국군이 이를 수습해 왕실 도서관인 ‘장서각’에 이관했다. 세간에 알려진 것은 1966년. 황손 이해청이 국문학자 정병욱에게 조선 왕실의 애장품을 알려준 덕분이었다. 이 역시 조선 왕실과 소설의 끈끈한 인연이 빚어낸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민간 소설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왕실 소설은 필체며 분량, 문제의식 등에서 사뭇 다른 결을 보인다. 왕실 소설은 30책 이상 많게는 180책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한다. 여기에 유려한 표현, 궁녀의 극묘한 한글서체는 일반인의 눈에도 확연히 그 차이가 들어올 정도다. 왕실과 함께 울고 웃던 ‘조선 왕실의 소설’은 궁궐이라는 갇힌 공간 속에서도 웃음과 자유를 꿈꿨던 조선 사람의 숨결이 담긴, 우리 서사 문학의 정수라고 하겠다.
홍현성 문학박사·한국국학진흥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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