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대형화되는 산불은 이제 연중 발생하는 기후 재난으로 자리 잡았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표한 최근의 연구 결과와 현장 실증 데이터는 우리가 그동안 산불 예방의 핵심으로 꼽아온 ‘숲 가꾸기’와 ‘임도(林道)’가 단순한 산림 경영의 수단이 아닌, 국가적 재난 관리의 ‘필수 인프라’임을 입증하고 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숲 가꾸기가 오히려 산림의 수분을 빼앗아 산불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하지만 국립산림과학원의 산불 확산 모의실험 결과는 정반대의 사실을 말해준다. 숲 가꾸기를 한 숲은 나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가지가 적절히 정리되어 있어, 지표면의 불이 나무 꼭대기로 옮겨붙는 ‘수관화(水冠火)’ 피해율이 35%로 나타났다. 이는 숲 가꾸기를 하지 않은 숲의 피해율 61%와 비교할 때 절반 가까이 낮은 수치다. 빽빽하게 우거진 숲은 산불이 발생했을 때 거대한 연료 탱크 역할을 하지만, 적절한 솎아베기를 거친 숲은 불길의 에너지를 분산시켜 대형산불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어막이 된다.
임도가 산불의 바람길 역할을 하여 불을 확산시킨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반박이 가능하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강원 고성과 경북 울진 등 산불 피해지에서 풍향과 풍속을 실측 모의실험한 결과, 임도의 설치 여부와 풍향·풍속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임도는 산불 확산을 저지하는 ‘방화선(防火線)’ 역할을 한다.
실제로 산불현장에서 임도의 위력은 수치로 확인되었다. 임도가 있는 경우 진화 인력과 장비의 접근 속도는 도보 이동 대비 약 12배나 빠르다. 지난 2025년 4월 발생한 경남 하동의 두 산불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임도 밀도가 높았던 옥종면 산불은 24시간 만에 진화되었으나, 임도가 부족했던 인근 지역 산불은 무려 214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임도가 확보된 지역은 야간 진화 효율도 약 5배 이상 상향되어 진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임도 밀도가 높은 지역(11.3m/㏊)은 낮은 지역(3.7m/㏊)보다 진화 시간을 약 9배 단축했고, 피해 면적 또한 현저히 줄어드는 결과를 보였다.
선진국들은 임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예산과 시설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산불대응전략을 수립할 때 임도가 포함된 도로를 활용해 산불 연료 관리 대상지를 선정하고 진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캐나다에서는 임도가 전략적 방화선이자 접근로다. 호주는 임도의 산불대응 중요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차량이 안전하게 오가거나 회차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고밀도 임도망(林道網)을 활용해 산불 비상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은 31~50년생 나무가 전체의 66%를 차지하는 편중된 구조다. 이러한 숲은 탄소 흡수 능력이 점차 떨어질 뿐만 아니라, 산불과 같은 재해에도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적절한 목재 수확과 나무 심기, 그리고 체계적인 숲 가꾸기를 통한 '산림자원순환경영'은 탄소 중립 달성과 산불 예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과학적 해법이다.
이제는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숲 가꾸기와 임도 확충은 우리 산림의 생태적 건강성을 높이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숲을 가꾸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산림을 물려주기 위한 우리 세대의 의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성현 국민대 석좌교수(전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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