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지 않는 오염 실체 추적
플라스틱 일회용품 등 사용 늘며
생태계·인체 침투… 임계점 경고
재사용·재활용 넘어 감량이 대안
유해물질 제거 ‘녹색화학’ 제시도
대오염의 시대/ 정선화/ 푸른숲/ 2만1000원
“보이지 않는 오염이 더 위험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다. 폭염과 한파, 미세먼지와 집중호우처럼 눈에 보이는 재난은 이미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됐다. 그러나 ‘대오염의 시대’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우리가 체감하는 기후 재난 이면에, 훨씬 더 조용하고 은밀하게 축적돼 온 ‘보이지 않는 오염’이 존재한다고 경고한다. 과불화화합물(PFAS), 환경호르몬, 미세플라스틱, 폐의약품 등 일상에 스며든 화학오염의 실체를 차분히 추적하며, 왜 지금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환경독성 전문가인 저자는 오염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진단한다. 1952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대규모 대기오염 참사 ‘런던 스모그’, 1984년 인도에서 벌어진 세계 최악의 화학물질 누출 사고 ‘보팔 참사’처럼 오염이 눈에 보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오염은 투명하고 미세하며, 복합적이고, 생태계와 인체에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게다가 그 위험은 불확실성 속에서 조용히 사회 곳곳에 스며든다.
저자가 오염 앞에 ‘대(大)’를 붙여 ‘대오염’이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의 오염은 개별 사건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증폭되는 복합 위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산업화 이후 인류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그 이면에서 대기·수질·토양은 물론 우리 몸속까지 각종 화학물질과 미세 오염물질이 침투했다. 이 거대한 축적의 결과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기후 위기 담론이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에 집중하는 사이, 일상 속 화학물질과 복합오염은 또 다른 위험의 지층을 쌓아왔다는 경고다.
대표적인 사례로 저자는 납과 DDT를 든다. 20세기 중반 납 첨가 휘발유는 자동차 엔진의 효율을 높이는 혁신으로 환영받았다. 그러나 장기간 노출된 어린이들에게서 신경계 손상과 학습능력 저하가 보고되며 그 위험성이 드러났다. 납은 체내에 축적돼 지능지수 저하와 행동장애를 유발할 수 있음이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DDT 역시 말라리아 퇴치의 ‘기적의 살충제’로 불렸지만, 생태계 먹이사슬을 교란하고 조류 개체 수 감소를 초래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과학적 경고를 무시한 채 성장 논리를 앞세운 결과”라며 “인과관계가 100%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잠재적 위해가 클 경우 선제적으로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오염물질은 과불화화합물(PFAS)이다. 탄소와 불소가 강하게 결합한 인공 화학물질군으로, 자연에서 잘 분해되지 않아 ‘영원한 화학물질’로도 불린다. 방수·방오 기능이 뛰어나 프라이팬 코팅, 소방용품, 산업 공정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돼 왔다. 문제는 자연 상태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특정 PFAS가 암, 면역체계 이상, 갑상선 질환과 연관 가능성을 보인다고 보고한다. 국내외에서 지하수와 수돗물에서 PFAS가 검출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사회적 파장도 커지고 있다. 저자는 이를 “21세기형 축적 오염”이라 부르며, 사용 전면 금지 또는 단계적 퇴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생활 속 간접 노출의 문제도 지적한다. “우리는 화학물질 노출을 줄이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을 조심한다. 유기농 식재료와 천연 음료, 유해물질이 없는 생활용품을 찾는다. 그러나 각종 포장재와 일회용품이 사용되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노출되는 화학물질의 양 또한 적지 않다. 폐기물, 특히 플라스틱과 그에 첨가된 화학물질은 환경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물과 토양을 거쳐 농작물과 사람에게 되돌아온다.”(246쪽)
저자는 “우리는 이미 플라스틱을 먹고 마시고 호흡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환경호르몬, 즉 내분비계 교란물질 문제 역시 심각하다. 플라스틱 용기, 영수증, 화장품 등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인체의 호르몬 체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특히 영유아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장기적 영향은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만큼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재사용·재활용을 넘어 ‘감량’ 중심의 순환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화학오염은 이미 거대한 구조가 되었지만, 그 구조 역시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만큼 다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편리함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단호히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후 처방식 규제를 넘어 오염 발생 단계부터 독성을 배제하고 자원 효율을 극대화하는 ‘녹색화학(green chemistry)’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화학제품과 공정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유해물질의 사용과 생성을 원천적으로 줄이거나 제거하자는 예방 중심의 전략이다.
아울러 기후변화 분야의 국제 과학기구인 IPCC와 같은 오염 분야의 국제 협력 체계를 구축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 대응과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오염의 시대’는 불안을 자극하는 대신, 보이지 않아 더 낯설었던 화학오염의 문제를 차분히 사유하게 만드는 교양서다. 우리가 외면해 온 위험을 직시하되, 동시에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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