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 다자주의 시대도 붕괴
각자도생 만으론 더 험난한 파도
국경 구분 없는 협력 시스템 필요
연초부터 유달리 주목을 많이 받은 분석 보고서가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안보 포럼인 뮌헨안보회의의 올해 연례보고서가 주인공이다. 보고서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파괴의 한가운데서(Under Destruction)’.
보고서는 오늘날 세계가 ‘전면적인 파괴’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진단했다. 이는 1945년 이후 유지되어 온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붕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다. 지난 2년 사이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여러 사건은 급격한 안보 인식 변화로 이어졌다. 동맹국인 나라들에서조차 트럼프 행정부가 ‘잠재적 안보 위협’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그린란드 매입을 위해 덴마크와 유럽 국가들에 관세 위협을 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덴마크 정보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잠재적인 국가 안보 위협이 될지 고심 중이라고 보고서는 언급한다. 주요 7개국(G7) 시민들 역시 미국을 지난해보다 ‘더 심각한 위험’으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 전쟁과 강압적 조치로 인해 미국이 세계 경제와 안보를 흔드는 주요 위협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후대응과도 연결돼 있다. 보고서에서 기후와 에너지 부문은 여러 분석 사이에 분산돼 있다. 그러나 이 퍼즐을 하나로 맞추는 순간, 국제 질서 붕괴란 전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전장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읽힌다.
첫째, 국제 기후 거버넌스의 붕괴다. 파리협정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로 상징되던 ‘다자주의의 황금기’가 끝났다고 보고서는 선언한다. 미국 정부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등 66개 국제기구 및 조약에서 탈퇴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둘째, 녹색산업의 안보화다. 중국은 핵심광물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공급망을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그 사이에서 공급망 안정과 산업 경쟁력, 기후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이 가운데 녹색산업은 전략적 우위를 앞세우는 산업 패권 경쟁의 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제는 이 경쟁이 공급망의 블록화와 통제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녹색기술 확산 속도는 둔화하고 비용 역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세계 온실가스 감축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지점이다.
셋째, 화석연료는 철저하게 거래와 강압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만의 경우 미국의 고율 관세 위협을 피하고 환심을 사고자 2029년까지 미국산 화석연료 444억달러(약 63조원)를 구매하기로 했다. 태국과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더불어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했던 배경 역시 화석연료 확보를 통한 이익 추구가 강력하게 작용했다.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는 구호가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넘어, 강압의 수단으로까지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어떨까? 보고서는 한국을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는 국가로 묘사한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얽힌 이중 의존 구조 속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는 것. 구조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감당해야 할 부담 역시 크다는 점이 언급됐다.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협력 없이 각자도생에 나설 경우, 더욱 험난한 파도를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올해 뮌헨안보회의의 결론은 명료했다. 과거와 같은 미국 주도의 구질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새로운 질서와 협력의 구축이 절실한 시대라고 말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역시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이 균열로부터 더 크고, 더 낫고, 더 강력하며, 더 정의로운 무언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물론 새로운 질서는 한 분야에서만 구축될 수 없다. 안보, 산업, 무역 등 시스템 전반이 다시 짜여야 한다. 기후대응은 그 모든 긴장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애초에 각자도생형 기후대응과 녹색산업 육성은 장기적 안정과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는 국경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떠올려야 할 시점이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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