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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물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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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림

초록이 튼다

아주 조금씩 꿈틀거리며

제 키를 한 발짝씩 발돋움하며

보리 싹보다 더 옹골진 튼실한 몸짓으로

저기

살아 있는 빛으로 스스로 아름다운

들창을 두들기는 봄비의 푸른 속삭임으로

내 귀의 달팽이관에 잠든 황금빛 달팽이를 깨워

세상 어디쯤으로 나가자고 자꾸만

우수가 지난 뒤로 부쩍 봄 냄새가 난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쌀쌀한 바람도 설탕을 슬쩍 녹인 듯 끝맛이 달다. 3월이 가까워지고 있다. 점심을 먹고 천변 산책로를 걷는 동안 물가 잡풀 더미에 부리를 밀어 넣고 쉴 새 없이 뭔가를 쪼아대는 새들을 본다. 겨우내 굶주린 속을 달래려는 듯 먹이를 찾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풍경은 아직 메마른 겨울의 잔흔으로 휑뎅그렁하지만, 사이사이 초록이 튼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챈 녀석들. 괜스레 흡족한 마음으로 그 열띤 식사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초, 록, 초, 록,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봄은 냄새로, 맛으로, 소리로 온다. 그 어느 계절보다 선명한 감각으로, 우리는 봄의 귀환을 알 수 있다. 이 계절의 몸짓이 얼마나 옹골지고 튼실한지. 그 빛이 얼마나 생생한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상기시킨다. 귀를, 심장을 깨워 “세상 어디쯤으로 나가자고 자꾸만” 지저귄다. 초, 록, 초, 록, 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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