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아니었다. 버텨낸 시간의 결과였다. 차준환은 그렇게 폐회식 전 밀라노의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
한국 남자 피겨 스케이팅을 대표한 차준환이 22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에서 펼쳐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피겨 갈라쇼에 섰다. 2018년 이후 8년 만에 다시 선 올림픽 갈라 무대였다. 싱글 4위로 메달은 놓쳤지만, 갈라 무대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차준환이 택한 곡은 국악곡인 송소희의 ‘낫 어 드림.’ 음악이 시작되자 국악풍 음악과 스케이트 날이 빙판을 긁는 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모두 차준환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어두운 무대에서 불빛이 차준환의 흐름을 따라 비췄다. 차준환이 입은 흰색에 베이지 장식이 달린 상의는 빙판을 가로지를 때마다 바람에 날려 살랑거렸다.
차준환은 벽을 짚고 관객석을 바라보며 연기를 펼쳤다. 얼음 위를 유영하는 차준환 얼굴에선 홀가분함이 보였다. 그가 트리플 점프(공중에서 세 바퀴 도는 점프)에 성공한 후 관객석에선 환호성이 들렸다. 양팔을 날갯짓하듯 들어 올리자 함성이 터지기도 했다.
갈라 무대에서만큼은 점수도, 순위도 없었다. 남은 건 자유였다. 차준환이 스케이팅을 시작한 계기는 자유로움. 피겨 생활을 관통하는 단어 역시 자유다. 올림픽이라는 오랜 꿈의 순간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곡이라며 이번 곡을 고른 이유를 설명했다.
낫 어 드림의 발매 당시 공식 소개 자료를 보면, 국악 창법과 현대적 편곡을 결합한 이 곡은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위로와 행복한 용기를 전하는 노래’다.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노래라기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을 인정하는 곡에 가깝다. 세 번째 올림픽을 마친 차준환의 시간과 겹쳐 보인다.
완벽한 무대와 달리 올림픽 무대로 향하는 그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한 달 동안 발에 맞는 스케이트를 찾느라 여러 스케이트를 번갈아 신으며 훈련했다. 발목이 눌리면서 오른발 복숭아뼈 주변에 물이 찼다. 물을 빼내고, 다시 차면 또 빼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서야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고백했다. 차준환은 “이 정도 통증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경기에 임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통증을 견디며 완주한 이번 대회는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니었다. 차준환이 좋아하는 가사는 세 가지. “구름곶 너머 꿈이 아니야”라는 노랫말은 그의 시간을 담은 말처럼 들렸다. 쇼트 프로그램 92.72점, 프리 스케이팅 181.20점, 총점 273.92점. 동메달과의 격차는 불과 0.98점으로 메달은 놓쳤다. 하지만 한국 남자 피겨 최고 순위인 4위를 기록했다.
가사 “달려온 나의 저 길을 바라봐”는 평창 빙판에 섰던 10대 소년에서 밀라노의 주연으로 성장한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는 문장으로 들린다. 또 갈라 무대에서는 구절 “마음을 놓아”처럼 순위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은 듯했다. 점수가 사라진 무대에 남은 것은, 치열하게 달려온 자신의 시간을 웃으며 바라보는 태도였다.
차준환 특유의 이너바우어(상체를 뒤로 젖힌 채 활처럼 빙판을 가르는 동작)가 무대의 정점을 찍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엣지를 깊게 세워 빙판을 갈랐다. 상체를 우아하게 뒤로 젖히며 관중이 숨을 멎게 만들었다. 자연스러운 이너바우어는 노래의 정서를 완성했다.
차준환에게 무대는 아직 남아있다. 비록 다음 달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202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여부를 고민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차준환의 무대는 끝이 아니다.
음악이 끝나자, 차준환은 양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 무대를 마무리했다. 팔이 올라가는 속도에 맞춰 동시에 환호 소리도 커졌다. 웃음으로 마무리한 차준환은 왼손을 오른쪽 가슴에 올린 채 작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함을 표하는 듯했다. 점수표 대신, 그의 시간이 박수를 받았다.
‘꿈이 아니야’라는 가사처럼 그는 이미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가 가슴에 올린 손은 관객을 향한 감사였을까. 아니면 빙판 위에서 버텨온 자신을 향한 인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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