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기간에 집 정리를 하다가 돌아가신 엄마가 예전에 사용했던 뜨개질 바구니를 찾았다. 보라색 실과 파란색 실을 섞어 대바늘뜨기로 목에 딱 맞는 목도리를 뜨려다 중단된 것 같았다. 또 흰색 코바늘 실로 뜨다 만 컵받침 같은 것도 보였다. 엄마의 지문이 잔뜩 묻은 엄마의 물건을 보니 기분이 몹시 슬퍼져서 하루 종일 바구니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손뜨개로 뜬 물건은 세상에 같은 디자인이 없이 딱 하나뿐이어서 특별하고 무엇보다 한 땀 한 땀 시간을 들여 떴다는 것 자체가 감동스럽다. 몇 년 전에 지인이 손뜨개로 뜬 가방을 선물해 준 적이 있고, 최근에는 한 작가 친구가 유기농 실로 뜬 따뜻한 손뜨개 목도리를 선물해 주었다. 선물해 준 것을 받기만 했지, 나는 중학교 가사시간 이후로 뜨개질을 해본 적이 없다. 반갑기는 하지만 엄마의 뜨개질 바구니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어젯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도움이 될까 하고 읽던 책에서 역사에 근거한 뜨개질의 정신치료 효과에 관한 이론 하나를 발견했다. 라훌 잔디얼이라는 신경외과 의사가 쓴 에세이 ‘칼날 위의 삶’을 읽던 중이었고 ‘트라우마’를 설명하는 파트에서였다.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여성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는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여성들만의 정치적 모임인 ‘여성클럽’이 조직됐고 이 여성들은 뜨개질을 했다. 단두대 옆에서 뜨개질하며 처형을 지켜보던 이 여성들을 ‘뜨개질하는 여성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심리학적으로 뜨개질 같은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작업은 트라우마 기억이 마음속에 고착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단두대 옆에서 뜨개질은 했던 여성들은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지 않았을 것이고, 뜨개질이 이 여성들을 보호해 준 셈이라는 것이 신경외과 의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어떤 장면이었을지 쉽게 상상이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엄마가 뜨던 대바늘 뜨개질을 하는 동안 뭔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다시 해보니 금세 뜨개질하는 방법이 다시 떠올랐다. 가끔 지하철에서 뜨개질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기분으로 했던 걸까 짐작해 본다. 엄마가 뜬 부분은 매끄럽고 아름다운 데 반해 내가 뜬 부분은 코도 빠지고 길이도 들쑥날쑥하다. 그래도 자꾸만 이어서 하려는 욕망이 일어나는데 정말이 뇌 한쪽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든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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