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쿠르베가 사람들과 인사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옆의 개도 쿠르베를 알아보고 반갑게 짖어댄다. 사람들이 쿠르베의 후원자와 그의 하인이라는 설명도 있고, 그저 평범한 이웃들이라는 설명도 있다. 누구였든지, 등 뒤 배낭 안에 이젤을 접은 막대기와 둥글게 말린 캔버스가 꽉 차 있는 걸 보면 쿠르베가 먼 길을 떠나려는 것 같다. 화면 오른쪽에 길 떠나는 마차도 그려 넣어 여행길의 분위기에 맞췄다.
쿠르베는 프랑스 동부 작은 도시 오르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지주였고, 아들이 법학을 공부해서 판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쿠르베는 파리로 유학 와서 루브르박물관의 렘브란트와 카라바조 그림을 본 후 법학을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택했다.
그는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미술을 익혔지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 했다. 작품의 창작이 감정이나 상상력보다 현실의 직접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그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던졌다.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아 갈색 톤과 빛의 묘사를 화면 안에 끌어들이기도 했고, 카라바조처럼 평범한 현실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타내려 했다.
이런 그림은 당시 미술계의 대세였던 낭만주의 경향과 다른 것이었기에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신의 작품이 전시에서 거부당하자, 그 옆에 천막을 세우고 ‘리얼리즘 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면서 미술계에 저항했다.
쿠르베의 저항으로 시작된 사실주의가 작가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이들은 지금까지 미술에서 소외된 시민과 서민들의 삶 속에서 주제를 택했다. 예술 감상의 민주화를 이룬다는 목표에서 보다 넓은 층의 사람들이 쉽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기법이나 판화 매체를 사용하기도 했다.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을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는다. 거창한 것보다 평범한 현실에서부터, 주변의 평범한 이웃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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