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24조원 시장이 만든 ‘소비의 자산화’ 현상
지금 사면 ‘상투’ 잡나…가격보다 ‘취향’ 물어야 할 때
“천천히 줄 서세요! 밀지 마세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트레이더조(Trader Joe’s) 매장 앞, 건물을 두 바퀴 반이나 휘감은 긴 줄 사이로 점원의 고함이 터져 나온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향한 곳은 신선식품 코너가 아닌 계산대 옆 구석. 단 몇 분 만에 캔버스 천으로 된 작은 가방들이 동났다. 계산대 위로 2.99달러(약 4000원)짜리 영수증이 찍히는 순간, 이 평범한 장바구니의 운명은 ‘소모품’에서 ‘자산’으로 뒤바뀐다.
2024년 봄, 전 세계를 강타했던 ‘트레이더조 미니 캔버스 토트백’ 대란의 풍경이다. 당시 이베이(eBay)에서는 300~500달러 선에서 실제 거래된 내역이 다수 확인됐으며, 일부 리스팅은 999달러(약 130만원)라는 비현실적인 가격에 올라오기도 했다. 원가 대비 수백 배에 달하는 수치다. CNN 비즈니스와 USA투데이는 이 현상을 이례적인 리셀 열풍으로 조명하며 집중 보도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6년 2월,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놀랍게도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국내 주요 중고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이 가방의 한정판 컬러나 미개봉 제품이 5만~10만원 선에 호가하는 게시물(2026년 2월 검색 기준)이 확인된다. 고작 4000원짜리 에코백이 한국에선 왜 ‘줄 서야 사는’ 명품 대접을 받을까.
◆24조원 시장 위에서 움직이는 욕망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한국의 소비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9일 KB금융경영연구소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약 24조원이다. 국민 대다수가 "언제든 팔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지갑을 연다.
이미 ‘되팔 수 있는 상품’은 소비재가 아니라 자산 후보가 되는 환경이다. 당근은 누적 가입자 3000만명 이상(2023년 공개 기준)을 확보했고,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의 거래액은 조 단위로 성장했다. 이제 한국 소비자에게 물건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다. 언제든 되팔아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쓰다가 남에게 주는 것이 중고였다면, 지금은 구매 순간부터 환금성을 고려하는 것이 2030 세대의 소비 공식”이라고 짚었다. 트레이더조 가방이 고가에 등록되는 건, 이 ‘환금성’에 대한 기대값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왜 더 갖고 싶어질까
이성적인 계산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간이 있다. 바로 ‘희소성’이 건드리는 심리다.
1975년 스티븐 워첼 연구팀의 ‘쿠키 실험’은 이를 증명한다. 똑같은 맛의 쿠키라도, 병에 가득 차 있을 때보다 2개만 남았을 때 사람들은 그 쿠키를 더 맛있고 비싼 것으로 평가했다. 행동경제학이 말하는 ‘희소성 효과(Scarcity Effect)’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FOMO(소외 공포)가 기름을 붓는다. “품절 임박”,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신호는 이성보다 감정을 먼저 자극한다.
특히 트레이더조 가방처럼 진입 장벽이 낮은 상품일수록 참여 문턱이 낮아진다. “4000원인데 일단 사두자”는 판단이 서는 순간 품절은 가속화되고, 그 품절이 다시 프리미엄을 만드는 구조다.
◆그래서, 지금 사야 할까
지금 중고 장터 검색창에 ‘트레이더조’를 입력하고 고민 중인 독자라면,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 냉정하게 3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되팔 목적이라면 신중해야 한다. 정보가 대중화된 이후 프리미엄이 빠르게 조정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리셀 시장의 수익은 늘 ‘정보 비대칭’을 선점한 이들의 몫이다. 이미 SNS 화제가 된 뒤에는 매물도 빠르게 늘어나 희소성이 유지되기 어렵다.
투자가 아닌 투기일 수 있다.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아서” 산다면 투기에 가깝다. 유행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다. 브랜드가 색상이나 시즌 로고만 바꿔 재출시(Restock)하는 순간, 초기 제품의 프리미엄은 빠르게 식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심비’가 핵심이다. 가격을 떠나 매일 기분 좋게 들고 다닐 수 있다면 소비다. 하지만 옷장에 모셔두고 가격 변동만 살핀다면, 그 공간 비용과 심리적 소모가 더 클 수 있다.
◆숫자보다 먼저 볼 것
2.99달러와 999달러, 24조원과 1조원. 숫자는 강력하지만 방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금 이 가방을 살지 말지는 간단하다. ‘오를까?’가 아니라 ‘내가 계속 들고 다닐까?’를 먼저 묻는 것이다.
리셀은 시장의 영역이지만, 소비는 결국 취향의 영역이다. 유행은 빠르게 오르지만, 후회는 더 오래 간다.
작은 장바구니 하나가 던진 질문은 생각보다 크다. 지금 당신이 사려는 건 가방일까, 아니면 남들이 부러워할 거라는 기대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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