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계 올림픽 도전사에서 설상은 주목을 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쇼트트랙과 이따금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다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 ‘빙속 3인방’으로 금메달 따는 종목이 된 스피드 스케이팅, 그리고 ‘피겨여왕’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까지. 한국의 동계 올림픽은 빙상이 주도해왔다.
물론 설상에서도 금메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이 2018 평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썰매 종목은 설상으로 분류된다. 아직 스키·스노보드에선 금메달이 없었던 한국에 드디어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최가온. 2008년생으로 아직 10대인 한 소녀가 한국의 동계 올림픽의 새 역사를 썼다.
최가온은 지난 13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획득해 스노보드 역사상 첫 올림픽 3연패를 도전하던 클로이 킴(미국, 88.00점)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스키·스노보드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금메달 따는 과정 자체가 드라마였다. 폭설 속에 치러진 결선 1차 시기에 최가온은 하프파이프 가장자리에 부딪혀 크게 넘어졌고, 큰 충격으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2차 시기 전에 공식 사이트에 DNS(DID NOT START)가 표기돼 기권이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가온은 불굴의 투지로 2차 시기에 출전했지만, 부상 여파로 첫 기술부터 실패했다.
누가 봐도 포기할 법했지만, 최가온은 기술 난이도를 한 단계 낮춰 3차 시기에 다시 도전했고, 그간 쌓아온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다양하 기술을 선보이며 90.25점을 받아냈다. 결선 출전 선수 중 유일한 90점대의 점수로 금메달이었다. 선두를 달리던 클로이 킴은 3차 시기에서 세 번째 점프에서 착지를 실수하는 바람에 최가온의 90.25점을 넘어서지 못했고, 최가온은 폭설과 부상이라는 두 가지 난관을 뚫어내고 한국 스키·스노보드 최초의 쾌거를 달성했다.
최가온의 금메달 뒤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있었다. 아버지 최인영씨의 눈물겨운 헌신과 뒷바라지, 클로이 킴의 아버지까지 찾아가 노하우를 배워낸 얘기. 그리고 우상이었던 클로이 킴과의 승부도. 8살 차이의 두 선수는 단순히 우상과 후배 관계만이 아니었다. 최가온의 성장 과정에는 클로이 킴이 멘토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자, 조력자의 역할도 있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한국 스키·스노보드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의 노력까지 있다.
경기 자체의 드라마틱함과 더불어 성장 과정에서의 서사, 강력한 경쟁자이자 멘토의 존재감, 후원자들의 헌신까지. 언론사들이 이런 얘기를 하나라도 발굴해 조명하는 게 건강한 경쟁이자 저널리즘일텐데...갑자기 최가온이 래미안 원펜타스라고 하는 강남 초고가 아파트 입주민이냐, 아니냐가 화제를 모은 건 너무나 씁쓸하다.
실제로 최가온이 래미안 원펜타스에 거주 중인지, 거주 중이라면 자가인지, 임대인지 아무 것도 확인된 게 없는데 언론들은 앞다투어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근거는 딱 하나. 래미안 원펜타스 주민들의 금메달 축하 현수막이었다. 실제로 이런 기사를 쏟아낸 언론사들은 팩트 확인은 없이 그저 클릭수 장사를 쏟아냈을 테다. 원펜타스의 평수에 따라 집값이 얼만지, 강남 8학군에 속하는 세화여고, 금수저 등등의 단어가 기사를 도배했다. 그런데 최가온이 금메달을 따는 데 있어서 래미안 원펜타스, 그 가격이 얼만지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10대 소녀 금메달리스트의 뒷배경이 관심을 모으는 건 부동산으로 계급을 나누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강남 입성’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강남은 그야말로 성역이고, 누구나 살아보고 싶어 하는 지역이다. 연일 강남 어디 아파트가 최고가를 경신했네, 어쩌고 저쩌고가 뉴스가 되는 한국 사회. 최가온의 금메달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평범한 빌라나 아파트에 붙었다면 뉴스거리가 됐을까. 강남 초고가 아파트에 붙었단 이유로 이슈가 되고, 네티즌들은 “금메달보다 집이 더 부럽다” 등의 반응을 쏟아내고. 이런 기사가 한국 사회의 부동산 불패 신화를 더욱 조장하는 건 아닐까. 적어도 스포츠에서는 이런 값싸고, 천박한 자본주의, 황색 저널리즘은 끼어들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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