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등장으로 기존 법칙 한계
삼성·SK, 칩 쌓는 ‘HBM 강자’
방심 안돼… 끊임없이 혁신해야
반도체만큼 매해 드라마틱하게 발전하는 상품은 없을 것이다. 2026년 현재 스마트폰용 반도체 하나는 20년 전 슈퍼컴퓨터보다 계산 속도는 빠르지만, 전력 소모량은 수백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계산 능력이 높아진 만큼, 과거 슈퍼컴퓨터에서 구동되던 것보다 복잡한 프로그램이 우리 손안에서 구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적은 무어의 법칙(Moore’s Law) 덕분에 가능하다. 무어의 법칙은 동일한 칩 면적 위에 만들 수 있는 반도체 소자의 개수가 제조 기술 혁신을 통해 2년마다 2배로 늘어날 수 있다는 일종의 경험칙이다. 이 덕분에 2년 뒤에 출시된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와 면적이 같더라도 성능은 2배 이상 높아질 수 있었다.
이 시절을 이끌어 나간 회사는 인텔이다.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통해 매해 더 빠른 반도체를 만들었고, 수많은 정보기술(IT) 회사는 인텔을 믿고 매해 더 복잡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복잡하고 기능이 많은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컴퓨터 사용자가 늘어나고, 그러면 더 많은 반도체가 팔려 자본이 인텔에 모였다. 인텔은 그 자본으로 더 미세화된 반도체를 만들었다. 이 시대가 무어(Moore)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 반도체 구매자들은 반도체가 출시되면 사서 테스트한 뒤, 끼워서 쓰면 되었다. 이 당시 성공의 방정식은 모두 인텔에 맡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반도체 제조에서 일어나는 일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반도체 미세화가 어려워지자 2년에 2배씩 빠르게 칩 성능을 높이는 것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어마어마한 소프트웨어가 등장해 과거보다 더욱 높은 성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회사들은 성능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칩 여러 개를 정밀하게 결합해 한 개의 칩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칩 하나의 성능이 늘지 않으니 더 많은 칩을 사용하는, 모어(More)의 시대가 된 것이다.
모어의 시대 방정식은 무어의 시대와는 다르다. 미세화를 최대한 끌고 가는 것은 당연하며, 동시에 미세한 회로를 가진 칩을 매해 더 많이 결합하여 마치 하나의 칩처럼 동작하는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로 인해 반도체 회사는 반도체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과거에는 소통하지 않던 많은 조직과 타 회사와의 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반도체 구매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여러 칩이 결합된 반도체는 너무나 복잡해 그냥 사서 끼우는 방식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반도체를 쓸 고객이 제조사에 요구사항을 주기적으로 전달하며 의견을 주고받아야 한다. 모어의 시대에는 제품당 칩 개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출시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하는 회사도 더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어의 시대에는 소통 능력이 전보다 더욱 중요하다. 반도체 제조가 어려워지니 제조회사 내부 조직끼리 소통을 잘해야 할 뿐 아니라, 제조공장이 직접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도와줄 파트너를 밖에서 찾아야 한다. 이도 안 되면 고객에게 반도체 성능이 계획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양해를 구해 고객이 대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 반도체 회사에 전부 맡기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시대를 끌어가는 글로벌 대표 회사 2개가 한국 회사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는 인공지능의 필수 메모리인 HBM을 만든다. HBM4 제품 안에는 메모리 회사가 만든 D램 칩 12개와, 파운드리 회사에서 제조한 제어용 칩 1개, 총 13개 칩이 수직으로 쌓여 있다. 그리고 쌓여 있는 각 칩의 크기는 엄지손톱 정도 크기인데, 각 칩은 1만 개 이상의 범프로 연결된다. 모어를 가능하게 하는 결합 기술 없이 무어의 법칙에만 의존했다면, 지금의 인공지능 혁명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어의 시대 승리자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모어의 시대에는 점점 더 많은 주체가 모여서 대화를 해야 최종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는 매해 반도체 회사가 익혀야 하는 지식과 노하우의 범위가 기존 반도체 산업의 영역을 넘어 크게 넓어진다는 의미이다. 1등은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계속 긴장하고, 혁신하고, 공부해야만 한다.
정인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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