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육·야식·비만 등 망가진 생활습관, 유전보다 ‘치명적’…70~90%가 환경 요인
초기 증상 없어 방치하다 화 키워…“45세 전이라도 몸이 보내는 신호 놓치지 말아야”
“젊고 건강해 보이는 환자들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이 부쩍 늘었다.”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대장암은 흔히 노년층의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병원 현장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모(34)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몇 달 전부터 배변 시 출혈이 있었지만, 잦은 야근과 회식 탓에 생긴 단순 치질이라 여겼다. 약국에서 산 연고만 바르며 통증을 견디다 결국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고,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매일 점심엔 배달 음식을, 퇴근 후엔 스트레스를 푼다며 맵고 짠 야식에 맥주를 달고 살았던 게 후회된다”며 고개를 떨궜다. ‘나이가 깡패’라는 말은 적어도 대장암 앞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젊은층만 거꾸로 간다
전체 대장암 발생률은 완만한 감소 흐름을 보이지만, 50세 미만 청장년층의 그래프는 정반대를 가리킨다.
14일 미국암협회(ACS)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전체 대장암 발생률은 줄어드는 반면 50세 미만에서는 매년 1~2%씩 꾸준히 오르는 중이다.
한국의 상황은 훨씬 위협적이다. 2022년 국제학술지 ‘랜싯 위장병학·간장학(The Lancet Gastroenterology & Hepatology)’에 실린 비교 연구를 보면, 한국 20~49세 대장암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12.9명에 달한다.
조사 대상 42개국 중 단연 1위다. 환자 수 자체가 가장 많다는 뜻이 아니라, 인구 규모를 고려했을 때 젊은 층이 대장암에 걸리는 빈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의미다.
◆유전보다 환경…범인은 ‘생활습관’
대장암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환경 요인’에 무게를 둔다.
세계암연구기금(WCRF)은 대장암의 70~90%가 식습관, 비만, 신체활동 부족, 음주 등 생활 환경과 얽혀 있다고 분석했다. 유전성 대장암은 전체의 5~10% 남짓에 불과하다.
특히 비만은 독립적인 위험 변수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과체중과 비만이 대장암 위험을 1.3~1.5배 높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잦은 가공육 섭취와 장내 미생물 변화, 만성 염증 상태가 더해지면 장 점막은 직격탄을 맞는다.
퇴근 후 이어지는 잦은 술자리도 치명적이다. 미국암협회 학술지 ‘캔서(CANCER)’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장기간 과음한 사람은 비음주자보다 대장암 위험이 20~25% 높았고, 직장암 위험은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늦은 발견이 키우는 비극
젊은 대장암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초기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앞선 박 씨의 사례처럼 복통이나 혈변이 나타나도 스트레스성 장염이나 치질로 가볍게 넘기기 일쑤다. “이 나이에 설마 암이겠어”라는 방심이 병을 키운다.
결국 병이 꽤 진행된 상태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의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는 이미 2021년에 대장암 선별검사 시작 연령을 50세에서 45세로 끌어내렸다.
한국 의학계 역시 45세부터 정기 검진을 강력히 권고한다. 대한대장항문학회는 대장암 선별검사를 45세부터 고려하도록 권고한다. 가족력이 있거나 선종성 용종을 제거한 경험이 있다면 3~5년 간격으로 더 촘촘한 내시경 추적이 필요하다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내 몸과 지갑을 지키는 선택
세계적인 의료기관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은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적정 체중 유지, 절주와 금연을 필수 생존 수칙으로 제시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일 30분씩 걷고 주 2회 근력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발병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암 치료에 들어가는 수천만원의 비용과 고통을 생각하면 일상의 작은 실천이 가장 확실한 재테크다.
통계는 조용히, 그러나 명확한 경고장을 날린다. 나이가 젊다고 암세포가 비껴가지 않는다.
배변 습관이 변했거나 원인 모를 복통이 이어진다면, 스마트폰으로 영양제를 검색할 시간에 당장 병원 진료 예약부터 잡아라. 그것이 무서운 질병으로부터 내 시간과 병원비를 아끼고 생존을 지키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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