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 위축 불가피
국내 저공해차 목표 재설정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온실가스 규제의 근거로 활용돼온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 결론을 폐기한다고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09년 마련된 위해성 판단은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 6종이 공중보건과 복지에 위협이 된다는 연방정부 차원의 결론이다. 공식 폐기 조치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연비 규제나 공장, 발전소 등의 온실가스 배출 제한이 대대적으로 완화될 전망이다.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61%로 설정하고 ‘탈(脫)탄소’ 속도전을 벌이는 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위해성 판단 폐기는 무엇보다 전기차 등 탈탄소 경쟁에서 뒤처진 미 완성차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규제 완화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위해성 판단 종료’를 선언하면서 “미 역사상 단일 조치로는 최대 규모의 규제 완화”라고 자찬했다. 위해성 판단에 대해선 “미 자동차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소비자에게 엄청난 가격 인상을 초래한 오바마 시대의 재앙적 정책이었다”며 “소비자는 전기차를 강제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미 정부는 앞서 작년 9월30일엔 전기차 구매를 촉진해온 보조금을 폐지한 바 있다.
우리 완성차업체의 대미 수출 전략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위해성 판단 폐기에도 자율주행 등의 추세를 고려하면 시장 수요가 내연기관차로 대거 회귀하는 대신 전기차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하이브리드차(HEV)로 몰릴 공산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HEV를 앞세운 다변화 전략으로 수출량을 늘린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 중이지만 일본 도요타 등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안심은 금물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이 제동을 건 만큼 한동안 글로벌 전기차 수요는 위축될 게 뻔하다. 그간 시장을 이끌어온 유럽연합(EU)이 2035년 시행 예정이던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철회한 데다 유럽 주요국은 보조금을 축소 내지 폐지하는 추세다. 이런데도 올해 신차의 28%를 전기·수소차 등 ‘저공해차’로 의무적으로 팔도록 강제 중인 우리만 과속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목표치가 2027년 32%, 2028년 36%, 2029년 43%, 2030년 50% 등 높아지는 데다 목표 미달에 부과되는 기여금이 대당 150만원에서 2028년부터 300만원으로 오르는 점까지 고려하면 우리 완성차업체의 경쟁력 향상에 반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세계 최고의 전기차 시장 및 가격경쟁력을 자랑하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려 내연차 퇴출을 접은 EU처럼 우리 내수시장도 중국의 저가 공세에 내주지 말란 법은 없다.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합리적인 판매 목표치를 재설정하는 등 유연하게 추진해주길 바란다.
온실가스 2위 배출국인 미국은 이번 조치를 앞세워 주요 교역국을 상대로 탄소 규제 철폐를 요구하거나 탄소 배출원인 화석연료 수입 확대를 압박할 우려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전날 자국 내 석탄산업 활성화 관련 행사 연설에서 “지난 몇달 동안 우리는 일본, 한국, 인도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우리의 석탄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역사적인 무역합의를 했다”고 소개했다. 한국과의 합의는 지난해 관세 협상을 통해 미국에서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를 구매하기로 한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탈탄소 목표 달성을 위해 석탄 발전 비중을 줄이고 있는 우리 정부로선 미국산 석탄 수입 확대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EU가 올해 본격 시행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환경 규제에 따른 불이익도 예상된다. 탈탄소는 자동차를 비롯한 수송부문뿐만 아니라 전력·산업부문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은 분명하지만, 국제적인 추세나 우리 산업 현실을 도외시한 채 과속할 이유는 없다. 정부는 속도 조절을 통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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