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흩어진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조상을 기리고, 묵은 시간을 씻어내는 날이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마음의 예식이기도 하다. 설을 앞둔 이때, 우리는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가 지닌 힘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일본인 며느리들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국경을 넘어 낯선 땅에서 수십 년간 한국 시부모를 모시고 다자녀를 키워낸 이들의 헌신은 한국 사회에서 약해져 가는 공동체 윤리를 지탱해온 숨은 버팀목이었다. 최근 국제가정협의회가 펴낸 『효정의 향기』에는 한국의 대통령과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등으로부터 받은 800여 건의 효행상 기록이 수록돼 있다. 그 기록을 통해 일부나마 들여다본 일본 며느리들의 삶은 종교와 국적을 넘어선 인간 존엄의 가치를 보여준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다나카 하나에 씨는 1992년 한국으로 시집와 20년 넘게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여섯째 아이’처럼 품어왔다. 남편의 효심에 공감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며 정성을 다했던 그녀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식사조차 힘겨워하던 시어머니를 마지막 순간까지 아기처럼 안아 보살피며 임종을 지켰다. 시어머니가 떠난 후 밀려든 것은 해방감이 아닌 가슴 시린 상실감이었고, 그녀는 그 먹먹한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다시 경로당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봉사하며 세상을 품고 있다. 그녀의 삶은 고통의 시간을 삶의 결실로 승화시킨 한 편의 서사시다.
강원도 춘천에 거주하는 세키 아스카 씨의 삶 또한 사랑의 또 다른 증언이다. 낯선 타국에서 시할머니와 시부모를 모시며 4대 가족을 돌보았던 그녀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시아버지와의 관계였다. 마음의 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백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신앙의 가르침을 붙들고 기도로 그 거리를 좁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시아버지가 쓰러졌고, 그녀는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곁을 지켰다. 그 헌신은 마비된 몸뿐 아니라 굳어 있던 마음까지 녹여냈고, 갈등하던 가족을 다시 하나로 묶어냈다.
충남 청양이 시댁인 고자이 야스요 씨는 일본의 과거 잘못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건너와 30년간 시어머니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이어왔다. 자식 다섯을 잃은 시어머니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낀 그녀는 다리가 아픈데도 나물을 캐 팔아 며느리의 생일 용돈을 챙겨주던 시어머니의 내리사랑에 지극한 효심으로 답했다. 며느리의 해산달마다 뜨끈한 밥을 지어 나르고, 자신은 누룽지를 긁어 드시던 시어머니를 향해 그녀는 “세상에 ‘지극한 시어머니상’이 있다면 우리 어머니께 드리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이는 고부간의 갈등이 일상이 된 시대에 진정한 사랑의 대물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귀한 사랑의 기록이다.
이것은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다. 많은 일본인 며느리들의 헌신적인 삶을 지탱해온 배경에는 남다른 종교적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제안한 국제합동결혼은 한일 간의 역사적 원한을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에서 풀어내려는 시도였다. 정치가 풀지 못한 역사적 감정을 이들은 매일 아침 차려내는 밥상과 병든 부모의 기저귀를 가는 손길로 풀어냈다. ‘미워할 수 없는 가족’이 되는 것이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40년이라는 시간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최근 종교 단체를 향한 비판적 여론과 혹독한 시선 속에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신도들의 삶과 기여까지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거주하는 8,000여 명의 일본인 며느리들은 한국 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효와 돌봄, 공동체 윤리를 가장 성실하게 실천해 온 주체들이다. 이들은 마을 반장, 부녀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고령화로 소멸해가는 농촌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지탱해온 ‘마을의 딸’들이기도 하다.
종교는 비판과 평가의 영역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피어난 숭고한 삶까지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 저출산과 가족 해체, 돌봄의 위기가 국가적 재난이 된 오늘날, 이들이 보여준 ‘가족 돌봄’의 서사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절실한 자산이다. 《효경》의 가르침을 고서 밖으로 끌어내 일상으로 살아낸 이들의 기록은 한일 간 상처를 가족애로 봉합하려 했던 쉽지 않은 실천이자, 한국 다문화 사회가 이뤄낸 의미 있는 성취다. 돌봄을 ‘짐’이 아닌 가족과 이웃을 잇는 ‘힘’으로 바꾼 이들의 헌신은 종교적 논쟁 속에서도 고요히 빛나는 효의 실천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기업 출신 부총리의 ‘탈관료주의’](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12/128/20260212521863.jpg
)
![[기자가만난세상] ‘코리아하우스’의 달라진 위상](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12/128/20260212521793.jpg
)
![[세계와우리] 서방 제재 4년을 버틴 러의 내구력](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12/128/20260212521856.jpg
)
![[기후의 미래] 언론의 ‘에너지 편식’ 괜찮을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12/128/20260212521809.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