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1949년 4월 출범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계기로 미국과 나란히 초강대국 반열에 오른 소련(현 러시아)이 동유럽을 넘어 유럽 대륙 전체를 장악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던 시절이었다. 동서 냉전의 격화는 2차대전 전범국이란 원죄 탓에 나토에서 배제된 서독(현 독일)이 1955년 나토에 가입하는 결정적 계기로도 작용했다. 나토에 맞설 목적으로 소련은 동독 등 동유럽의 공산주의 위성국들을 끌어모아 바르샤바조약기구(WTO)를 결성했다. 동·서독 간의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나토와 WTO가 대치하는 형국은 언제든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다. 3차대전이 일어난다면 이는 핵전쟁으로, 인류 절멸의 재앙을 초래할 게 뻔했다.
1991년 냉전의 한 축이던 소련이 해체됐다. 러시아가 소련의 핵무기 등을 계승했으나 예전 같은 초강대국 지위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서방 세계는 “역사의 종말” 운운하며 기뻐했다. 그간 소련을 가상의 적으로 삼아 군사력을 증강해 온 나토 회원국들은 빠르게 병력과 무기를 감축했다. 2001년 9·11 참사는 나토에 새 방향을 제시했다. 나토는 미국을 겨냥한 테러 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다. 나토 헌장 5조의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one-for-all, all-for-one) 원칙에 따라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과 어깨를 겯고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했다. 현재까지 나토 77년 역사상 헌장 5조가 발동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다.
오랫동안 유럽과 나토를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간주해 온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변화를 겪고 있다. 새롭게 채택된 안보 전략(NSS)은 유럽 대신 서반구(남북 아메리카)를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지역으로 지목했다. 그에 따라 새 국방 전략(NDS)은 유럽의 방위는 미국 말고 유럽 동맹국들이 1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의 역할은 핵우산 제공 정도로 제한될 것이란 점을 명시했다. 이제 미국은 옛 소련을 대신해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과 맞서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요즘 유럽은 ‘미국 없이 우리만의 힘으로 과연 방위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물음을 놓고 설왕설래가 일고 있다.
미국 행정부가 ‘나토 3.0’이란 개념을 제안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1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창립 이후 소련 붕괴까지를 ‘나토 1.0’, 냉전 종식 후 최근까지를 ‘나토 2.0’으로 각각 규정한 뒤 나토 3.0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콜비에 따르면 나토 1.0의 패러다임은 강경하고 유연한 현실주의, 나토 2.0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라는 자유주의적·국제주의적 접근법이다. 나토 3.0은 굳이 따지자면 나토 1.0의 패러다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원국들이 과거 냉전 시대처럼 국방비를 과감히 늘리고 자주 국방의 의지를 결연히 다져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나토 1.0와 3.0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토 1.0 시대에는 모든 회원국이 미국을 굳게 신뢰했다. 하지만 나토 3.0은 이것이 부족하다. 최근 유럽 주요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유사시 미국이 동맹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불신을 받는 상황에선 ‘나토’ 뒤에 3.0이든 4.0이든 어떤 숫자를 붙이더라도 소용이 없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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