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전력증강 중 최대 규모인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1일 KDDX 사업 예비설명회를 개최했다. 예비설명회는 참여 희망 업체들에게 입찰공고 전 사업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다.
방위사업청은 입찰공고 및 제안서 평가 등을 거쳐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1번함) 건조 업체를 7월쯤 선정한다.
함정 건조 분야에선 KDDX 이후 대규모 사업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입찰 참여업체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에 치열한 채점표 싸움이 불가피하다.
일감과 매출 확보 차원에서 양대 조선소의 수출 경쟁도 한층 치열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KDDX, 기술·공급망 등이 변수
KDDX는 약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t급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사업이다.
2012∼2013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했고, 기본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진행했다.
방위사업청은 2023년 12월 기본설계를 마친 뒤 수의계약 형태로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진행하려 했으나, 업체간 갈등으로 사업이 2년 가까이 지연됐다.
HD현대중공업은 “함정사업 관행에 따라 기본설계 수행 업체가 맡는 것이 타당하며, 사업자 선정은 수의계약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화오션은 “지난 2019년 HD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함정 관련 자료를 유출해 관계자가 유죄판결을 받았다”며 경쟁입찰 또는 공동개발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체 간 갈등 격화로 논란이 증폭되자 방위사업청은 사업추진방식을 정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12월 경쟁입찰 방식으로 사업자를 정하기로 했다.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비는 9000억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당초 8821억원이었으나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해서 소폭 인상됐다.
방위사업청은 사업의 신속·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예비설명회에서는 입찰공고 이후 공개되는 주요 요구사항 일부를 사전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정보 비대칭성을 최대한 줄이고 사전 준비기간은 늘리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했으므로 제안서 작성에 필요한 정보가 풍부하다. 한화오션은 기본설계를 하지 않아 정보가 부족하다.
기본설계를 하지 않은 업체가 상세설계 관련 제안서를 제대로 쓰려면 기본설계에 포함된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비설명회를 계기로 양측은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양측은 방위사업청이 지난해 12월 경쟁입찰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직후부터 관련 인력을 투입하는 등 사전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수주의 성패는 기술력과 성능, 공급망, 보안 등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가격은 일정 수준만 맞추면 양측이 동일한 점수를 얻을 수 있다.
KDDX는 사업 일정이 2년 가까이 지연됐다. 초기 단계에서의 지연은 실제 건조 및 전력화 과정에서 몇 배에 달하는 일정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
이같은 위험을 방지하려면 선도함 건조 직후 발생할 결함을 최소화해야 한다. 해군 대구급 호위함(울산급 Batch-II)의 경우 선도함에서 수년에 걸쳐 추진체계 등 문제가 발생해 작전 활동에 악영향을 끼쳤고, 사회적 논란을 초래했다.
다수의 첨단 장비를 탑재하는 KDDX는 대구급 호위함보다 잠재적 결함 발생 위험이 더 크다. 가격 경쟁력보다 신뢰성과 안정성이 우수한 설계 및 건조기술을 갖춘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신뢰할 만한 공급망 구성도 핵심적 요소다. KDDX는 발주처가 제공하는 관급 장비 외에 계약 당사자가 확보해야 하는 도급 장비가 적지 않다.
도급 장비 제조업체 중에는 한국 해군과 방위사업청과 오랜 신뢰 관계가 형성된 업체, 대체 불가인 단일 공급원도 있다.
이들 업체가 만드는 장비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제안서의 신뢰도가 달라진다.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제안서 내용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대체 공급자를 구해도 경쟁업체가 기존 도급업체를 KDDX 공급망에 포함하면 평가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약 5000억원 규모였던 손원일급 잠수함 성능개량 사업에서도 음파탐지기 등의 핵심 장비와 기술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 과정에서 관급·도급 장비가 어디에 필요한 지 식별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화오션보다 공급망 구성에서 한층 유리하다. 한화오션으로선 방위사업청이 인정할만한 도급 장비 업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셈이다.
보안 등의 문제도 고려대상이다. 보안 리스크는 KDDX 사업 지연의 핵심 원인이었다. 군함 건조능력의 유지·발전 관련 정책적 고려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해외 수출 시도 활발해질 듯
KDDX 사업을 둘러싼 업체간 갈등 증폭의 원인으로는 국내 함정 사업 규모 감소가 지목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선 KDDX 이외에 다수의 대형 함정을 건조하는 사업이 흔치 않다. 올해 기준으로 신규사업은 노후화한 해양정보함(신세기함)을 대체할 해양정보함-Ⅲ 정도다. 오는 2035년까지 1조9423억원을 투입, 2척을 만들 예정이다.
도산안창호·장영실급 잠수함 후속 격인 장보고-Ⅲ 배치(Batch)-Ⅲ는 추진체계 등의 변수로 사업 추진 속도가 더디다.
윤영하급 고속함을 대체할 연안초계함과 전투용 무인수상정 등은 소형함이다. 건조에 이를 정도로 사업화가 이뤄지진 않은 상태다.
KDDX 사업 수주와는 별개로 일감 확보를 위한 해외 수주 시도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HD현대중공업은 8∼1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WDS)에 참가했다.
사우디는 신형 호위함 등을 대규모로 도입하는 해군 현대화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미국에서 프리덤급 연안전투함을 토대로 만드는 다목적 수상 전투함(MMSC) 4척을 도입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스페인과는 호위함 3척을 구매하는 계약을 2024년에 체결한 바 있다.
HD현대중공업도 사우디 요구조건에 최적화한 6000t급 수출형 호위함 HDF-6000을 선보였다. 호주 호위함 사업에서 국산 호위함이 승무원이 많고 항속거리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HDF-6000은 탄도미사일 방어능력을 갖춘 고성능 함정으로서 스텔스 성능 극대화·무인전력 운용 설계가 적용됐다.
수직발사기(VLS) 46셀과 76㎜ 함포, 대함미사일 8기, 35㎜ 근접방어체계(CIWS) 등을 갖출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은 사우디 정부 정책을 고려, 호위함 수주 시 HD한국조선해양과 사우디 국영 기업 아람코 등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사우디 IMI 조선소를 중심으로 HDF-6000의 현지 건조 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오션도 태국 해군 호위함 사업 참여가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한화오션은 유럽산 무장과 전투체계 등을 갖춘 4000t급 호위함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6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국내 조선업계는 물론 K방산 전반에 파급력이 큰 사업이다.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와 더불어 최종 후보에 오른 한화오션은 수주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후한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수주도 지속되고 있다.
업계가 군함 수출에 적극적이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함정의 수출 과정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타적경제수역(EEZ) 경비 등의 해상 치안에 초점을 맞춘 함정은 무장과 전자장비 등의 사양이 낮다. 부가가치가 높지 않다. 함 내 자동화 수준이 높고, 고난도 해상작전이 가능한 군함은 유럽 조선소들이 판매해왔다.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 확대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군비 경쟁 속에서 군함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프랑스 나발 그룹·영국 밥콕·이탈리아 핀칸티에리 등 유럽 조선소가 대부분 수주했다. 한국은 필리핀과 페루 정도다.
신흥 경쟁자도 등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우크라이나 등에 초계함을 수출한 이력을 지닌 튀르키예는 중동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튀르키예 조선업체 아레스(ARES)는 사우디에 조선소 두 개를 만들어 현지 공략을 강화할 방침이다.
선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 함정의 수출은 전차·자주포를 포함한 지상장비 분야와 달리 초기 단계다.
최근 수년간 K방산의 수출 성과에 가려졌지만, 첨단 함정 수주를 위해선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
수주 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경험을 축적하고, 시장 수요에 맞는 기술을 확보하는 과정을 꾸준히 거쳐야 한다.
고난도 해상작전에 필요한 첨단 함정 전투체계 확보가 시급하다. 미국과 유럽의 전투체계는 성능과 신뢰성을 겸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군과 정부, 방산업계가 국내 사업을 더욱 철저하게 집행, 기술 능력과 신뢰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는 구성품 및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접촉하면서 함정 구성요소를 함께 만들고 시험하는 기회다. 건조과정에서 겪는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기술축적 효과가 크다.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가 K방산의 향후 경쟁력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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