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현재 ‘정치의 시간’ 을 지나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이재명정부의 탄생. 재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일련의 사건은 한국 정치의 복잡성과 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세계일보는 정치적 격랑 속에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층 더 깊은 온라인 인터뷰를 준비했다.
<‘더’ 깊숙한 인터뷰>라는 코너로 정치인들의 신념과 태도, 그리고 정치철학을 내밀하게 파고들 계획이다. 질문에 재질문을 거듭하며 그들의 속내를 끌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려는 뜻에서다.
“나를 역사발전의 도구로 써주세요.”
스물 세살의 청년 이광재는 1988년 처음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는 말과 함께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그렇게 노무현의 사람이 되었고, 노무현과 정치를 했다. 참여정부시절 ‘좌희정·우광재’로 불리는 명실상부한 노무현의 오른팔이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한 후에는 ‘친노의 적자’였다. 그리고 2026년 2월 이광재는 ‘노무현의 길을 따르겠다’며 6·3 지방선거 강원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인생에서 ‘노무현’은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그뿐만 아니라 친노, 아니 친문(친문재인) 정치인 모두 노무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청출어람’은 할 수있다. 그것이 좋은 정치인의 덕목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 역시 자신을 역사발전의 도구로 자임하고 있는지. 그래서 노무현을 넘어섰는지. 그래서 세계일보는 이광재에 물었고, 이광재는 답했다.
질문자의 질문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답은 최대한 현장감을 살려 편집했다. 다음은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에서 진행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①에서 이어
—3∼4년 전에는 국내 이슈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외교 이슈를 더 많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주로 이야기하는 건 혁신을 받아들이면서 이 사회의 불안정성을 줄이는 거죠. 그래서 제가 기본사회, 기본소득 이런걸 얘기하는 거죠. 큰 틀에서 국가전략으로 보면 경제, 국방, 외교가 하나로 묶여져야 합니다.”
—예전에 얘기하시는 걸 보면 에너지 얘기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에너지의 핵심은 전기입니다. SMR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신재생 에너지도 피할 수 없죠. 나는 논이나 소규모 부지보다 공단 지붕 태양광이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안산·창원 같은 공단 지붕 면적이 1억3000만평 정도 됩니다. 변전소도 가까워 효율이 높죠. 문제는 금융이에요. 은행에서 지붕을 담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면적과 생산량이 명확한 만큼 지붕을 담보로 인정하는 혁신금융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는 국가 보증이 필요하죠. 국가가 ‘지붕 담보’를 인정해 주면 됩니다. LNG(액화천연가스) 얘기도 하죠. 비싸더라도 앞으로 20~30년은 써야 합니다. LNG와 수소를 결합한 혼소 체계로 가야 합니다. 해상풍력 얘기도 해보자면 노르웨이가 강자죠. 근데 우리나라는 플랜트 기술이 강하죠.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협력해 전남 등에 대규모 해상풍력을 조성하면 에너지 불안을 줄일 수 있습니다. 몽골의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한국이 몽골에 비자 전면 자유화를 제안할 필요도 있지요. 러시아를 통해서 바다로 나갈 길을 열어주면 거대한 자원이 있습니다. 남과 북이 힘을 합치는 걸 생각해보죠. 8000만 인구의 국가가 됩니다. 미·러, 미·북 수교와 함께 북극 항로가 열리면 새로운 경제의 길이 열리죠. 그래서 북한을 설득하려 합니다. 개성공단처럼 단순 노동이 아니라, 고성 접경 지역에 자율주행·원격의료·원격교육을 실험하는 기술 산업 도시를 만들자는 거죠. 북한은 자본이 부족해 점핑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고, 이런 제안은 미국에도 나쁠 게 없습니다.”
—사실 이 질문을 하러 왔습니다. 노 대통령께서 ‘역사발전의 도구로 써달라’라고 하셨죠, 본인도 그 생각이신가요?
“그렇죠. 저는 좀 조숙했다고 해야 할까. 중학교 때 원주로 전학을 가서 장일순 선생님을 만나고 지학순 주교를 비롯해 김지하, 박경리 같은 분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일찍 사회에 눈을 떴죠. 학생운동을 하다 23살에 노무현 국회의원을 만났는데, 그때부터 이 나라의 운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됐습니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장면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누나와 함께 부잣집에 텔레비전을 보러 갔다가 쫓겨난 일이다. 아버지가 화가 나 마당에 텔레비전을 놓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감자와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드라마 ‘여로’를 봤습니다. 그때 ‘가난이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물질이 영혼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았죠. 또 하나는 공부를 거의 못하던 나를 한 선생님이 나머지 공부로 끌어주셨고, 몇 달 뒤 반에서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된 경험이다. 인간은 관심과 애정, 교육으로 진화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야학 교사를 했고, 학생운동을 하다 1993년부터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고 국가와 세계 질서에 대해 끝없이 쓰고 지우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강의록을 함께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국가 전략과 세계 정세를 공부하는 훈련이 쌓였죠. 나는 사적인 시간이 거의 없어요. 취미도 없고요. 공부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다 보니 ‘세계 흥망사’, ‘국가는 왜 흥하고 망하는가’를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역사도 결국 데이터죠.”
—인간 이광재의 입장에서 ‘노무현’은 넘어서야 하는 존재입니까. 이어가야 하는 존재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은 넘어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어가야 할 유산이죠. 노 대통령의 생각 속에는 내 생각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서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죠. 노 대통령 이후 우리 사회는 일정 부분 단절을 겪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사상가에 가까운 사람이었죠. 시대를 앞서 나간 사람이었구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이 IT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AI의 시대입니다. 새로운 리더십과 새로운 세계 질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과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사실 나도 한때는 체념했죠. 젊은 세대가 똑똑하긴 한데 과연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란 국면에서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봤습니다. 희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성질서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이 되느냐보다 기성질서를 혁신하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 도쿄대 총장이 1980년대 서울대를 방문했을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젊은이가 있으면 그 나라는 된다’고 했다는 말을 했었어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중에서야 이해했습니다. 지금 그 에너지가 응원봉으로 분출되고 있지만 하지만 그 에너지는 새로운 시대가 안 오면 안 만들어져요. IT 시대가 없었다면 ‘이해진’이나 ‘김범수’ 같은 인물이 설 땅이 있었을까요? AI 시대가 왔기 때문에 기존 질서로는 습득할 능력과 시간이 부족해지고, 새로운 생태계가 들어설 공간이 생깁니다. 그래서 나는 희망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하부 토대가 강력해져야 해요. 그러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는겁니다. 내가 코스닥 3000을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또 하나는 혁신적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안정입니다. ‘삶의 그물’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시절 국부펀드와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결정했고, 국회의원이 되어 법으로 만들었거든요. 지금 말하는 성장 국부펀드 구상도 같은 맥락입니다. 돈을 쓰는 국가에서 돈을 버는 국가로 대전환을 해야 합니다. 태어날 때 국가 펀드에 1억 원을 넣어 투자하면 스무 살 성인이 되면 3억 8000만원이 됩니다. 여기서 1억의 자본을 줍니다. 남은 자금으로 45년을 굴려서 은퇴할 때는 국가와 수익을 나누는 구조를 만들면 AI와 로봇의 시대에도 비교적 안전한 삶의 길을 만들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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