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온라인 클래식 매체 ‘바흐트랙(Bachtrack)’은 전 세계 공연 일정과 아티스트 정보를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한다. 해마다 연초, 이 기록을 토대로 한 해의 공연 흐름을 통계로 정리한 보고서를 내놓는데, 클래식의 ‘분위기’를 ‘감’이 아니라 ‘수치’로 읽게 해주는 자료라 늘 기다려진다. 최근 공개된 2025년 보고서는 콘서트·오페라·무용 3만1455건의 기록을 기반으로 여러 지표를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키워드는 단연 ‘제트 세트(The Jet Set)’다. 본래 제트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여가를 즐기는 부유층을 가리키던 말에서 유래한 이 지표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나라를 순회한 음악가를 추려낸다. 지난해 지휘자 부문에서는 다니엘 하딩이 16개국으로 1위, 파보 예르비가 14개국, 이반 피셔와 정명훈이 13개국으로 뒤를 이었다. 연주자 가운데서는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가 16개국, 안드라스 쉬프가 15개국을 기록했다.
바흐트랙은 공연 횟수를 기준으로 ‘가장 바쁜 지휘자’와 ‘가장 바쁜 오케스트라’ 순위도 집계한다. 이동 범위와 무대 횟수를 함께 보면, 누가 가장 활발하게 세계를 돌았는지 윤곽이 더 또렷해진다. 물론 숫자가 곧 예술의 성적표는 아니다. 최다 공연을 기록한 오케스트라가 시카고 심포니라고 해서 베를린 필하모닉보다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숫자들이 분명히 가리키는 사실은 있다. 오늘날 클래식은 한 도시의 전통에만 뿌리내린 장르가 아니라,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동과 네트워크 위에 놓인 산업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기후 위기라는 변수가 얹히면 질문은 더 묵직해진다. 한 해에 십수 개국을 오가는 관행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 투어 횟수를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투어의 ‘동선’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권역에 머물며 연속 공연을 소화해 이동을 줄이거나, 수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탄소를 관리하는 모델을 마련할 때가 됐다. 이동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이동을 어떻게 기록하고 책임질 것인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통계는 ‘개방성’의 가치도 또렷이 드러낸다. 영국은 2016년 82개 투어 악단을 맞았지만 2025년에는 50개로 줄며 6위로 내려앉았다. 브렉시트 이후 높아진 비자·행정 장벽이 음악가들의 발길을 돌리게 한 것으로 읽힌다. 장벽이 높아질수록 관객이 누릴 기회도 줄어든다. 초청 비자를 비롯한 행정 절차가 복잡할수록 교류가 둔화될 우려가 크다.
레퍼토리의 변화는 희망적이다. 현역 작곡가 작품의 콘서트 비중은 지난 10년 사이 약 7%에서 거의 14%로 늘었다. 다만 통계의 사각지대도 여전하다. 바흐트랙의 관측망은 기본적으로 유럽과 북미 중심으로 구축돼 있다. 중국 작곡가 예샤오강은 별도 분석에서 50회 이상 연주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주류 집계에서는 빠져 있었다. 기록되지 않으면 논의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숫자에서 빠진 존재는, 곧 담론에서 빠진 존재가 된다.
한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젊은 작곡가 위촉작, 신인 연주자의 데뷔 무대 같은 성과가 국제 데이터베이스에 체계적으로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검색되지 않는 공연은 초청으로도, 재연으로도 이어지기 쉽지 않다. 이러한 공연 정보가 표준화된 형태로 축적되어 내수용 전산망에 머무는 데 국한하지 않고, 세계 클래식 시장과 직접 동기화되어야 한다.
나 역시 지난해 바흐트랙과 그라모폰 등에 영어로 30편이 넘는 글을 기고했다. 스스로의 성과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통계가 우리를 비춰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먼저 현장을 기록해 글로벌 공연시장과 같은 호흡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흐트랙의 보고서가 해마다 확인시켜주는 사실은 단순하다. 기록하고 공유하는 자만이 연결된다.
글·사진=이상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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