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동인(1900∼1951)의 단편소설 ‘붉은 산’(1932)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을 떠나 중국 만주에 살던 동포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조선족 마을에 갑자기 ‘정익호’라는 인물이 출현한다. 도박판을 전전하고 아무에게나 싸움을 걸며 툭하면 칼부림을 하니 모두들 그를 ‘삵’(살쾡이)이라고 부르며 경원시한다. 하지만 천하의 악당 같은 삵에게도 민족 의식은 있었다. 조선인 소작농들을 수탈하는 중국인 지주를 혼내주러 갔다가 되레 본인이 죽을 위기에 처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 삵은 유언처럼 “붉은 산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서 붉은 산은 흔히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불리는 한반도 땅을 뜻한다. 왜 붉은 산일까. 일제강점기엔 한반도의 산(山) 거의 대부분이 나무 없이 붉은 흙만 보이는 민둥산이었기 때문이다.
장년층 혹은 노년층의 한국인이라면 1970년대 후반 고속도로를 지나갈 때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라는 표지판을 본 기억이 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아래 역대 최장수 산림청장(1973년 1월∼1978년 9월)을 지낸 손수익(2022년 별세) 전 교통부 장관의 작품이다. 그가 산림청장에 취임한 1973년 박정희정부는 제1차 치산녹화(治山綠化) 10개년 계획을 만들어 실천에 돌입했다. 한마디로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 민둥산을 없애자’는 운동이었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농림부 산하에 있던 산림청을 내무부 소속으로 이관했다. 당시 내무부 관료이던 고건 전 국무총리의 회고록에 따르면 반발하는 농림부 장관을 향해 박 대통령은 “농림부는 식량 자급에 매진해야 하는데 산림 녹화까지 하기엔 힘이 버겁다”고 타일렀다. 이어 “치산녹화 계획 기간 동안만 산림청을 내무부에 빌려줬다가 끝나면 돌려받으라”고 타일렀다. 산림청이 농림부로 원대 복귀한 것은 14년 뒤인 1987년의 일이니, 제법 ‘장기 임대’가 이뤄진 셈이다.
오늘날 민둥산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성공한 치산녹화 사업은 식목일과 떼려야 뗄 수 없다. 1949년 이승만정부가 매년 4월5일을 식목일로 지정하고 법정 공휴일 지위까지 부여했으나, 이듬해 6·25 전쟁이 터지면서 산림 녹화는 국가 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1960년대 박정희정부가 출범하며 비로소 식목일이 제 역할을 하게 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1970∼198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시행의 결과 한국에서 민둥산은 사라졌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식목일은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겉으로는 ‘주 5일 근무 제도’ 시행에 따른 공휴일 재정비를 이유를 들었다. 실은 ‘치산녹화 임무가 100% 완수됐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기후환경에너지부가 10일 식목일을 지금의 4월에서 3월로 앞당기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후 변화로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한 점을 고려할 때 ‘4월 식목일’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기후 변화 영향으로 원래 식목일인 4월5일 나무를 심으면 착근(着根·뿌리 내림)이 잘 안 된다”며 “식목일을 3월로 앞당기기 위해 산림청과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80년 가까이 지켜 온 국가 기념일의 날짜까지 바꿔야 한다니, 기후 변화의 파급력과 위험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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