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대 46만명 추적 결과, 신선한 과일 매일 먹으니 사망률 17%·합병증 13% 감소 확인
핵심은 식이섬유 파괴하는 믹서기 멀리하기…식후 2시간 뒤 ‘주먹 반 개’ 씹어 먹는 게 정석
“선생님, 귤 한 개 먹었는데 죄지은 것 같아요.”
당뇨 5년 차 주부 이모(56) 씨는 요즘 마트 과일 코너를 지날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유튜브를 켜면 ‘과일은 설탕 덩어리다’, ‘당뇨 환자에겐 독약이다’라는 썸네일이 공포 영화처럼 쏟아지기 때문이죠. 믹스커피도 끊고 떡도 끊었는데, 삶의 유일한 낙인 제철 과일마저 뺏겨버린 기분. 정말 과일은 당뇨 환자가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일까요?
현장의 내분비내과 전문의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오히려 “환자들이 유튜브만 믿고 과일을 너무 안 먹어서 영양 불균형이 올 지경”이라고 하소연합니다.
◆46만명의 데이터가 증명한 ‘반전’
9일 과학적 근거부터 따져보자. 세계적 권위의 의학저널 ‘PLOS Medicine’에 실린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논문은 흥미롭다.
중국의 성인 46만명을 7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신선한 과일을 매일 섭취한 당뇨 환자가 과일을 거의 안 먹는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17%나 낮았다. 심지어 신장이나 눈이 망가지는 당뇨 합병증(미세혈관 질환) 위험도 28%나 줄었다.
이유가 뭘까. 비밀은 ‘식이섬유’에 있다. 과일 속 천연 당분은 사탕이나 주스의 액상과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식이섬유라는 촘촘한 그물망에 싸여 있어 소화 흡수 속도가 느리다. 비타민과 항산화 성분은 덤이다.
◆“문제는 ‘어떻게’ 먹느냐다…믹서기는 갖다 버려라”
물론 “아무 과일이나 막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섭취 방식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가장 나쁜 습관은 과일을 갈아 마시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믹서기에 가는 순간 식이섬유 그물망은 파괴되고, 과일은 그저 ‘설탕물’로 돌변해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킨다”며 “과일은 마시는 게 아니라 반드시 씹어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씹어야 산다. 사과 껍질의 펙틴, 귤의 하얀 속껍질 등은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식후 바로 먹기보다는 식사 2시간 뒤 간식으로, 주먹 반 개 정도의 양을 천천히 씹어 먹는 게 정석이다.
수박이나 파인애플처럼 부드럽고 당도가 높은 열대과일보다는, 사과·배·단단한 복숭아처럼 씹는 맛이 있고 혈당지수(GI)가 낮은 과일을 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극단적 절제보다 ‘똑똑한 타협’을
“먹는 즐거움을 잃으면 치료 의지까지 꺾입니다.”
현장 의료진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혈당 수치에 집착해 스트레스를 받느니, 좋아하는 딸기 3~4알을 기분 좋게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더 걷는 게 낫다는 얘기다.
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건 아닐까. 과일은 죄가 없다. 나쁜 건 과일을 ‘주스’로 만들어 물처럼 마시는 우리의 습관일 뿐이다.
오늘 저녁엔 퍽퍽한 닭가슴살 샐러드 위에 얇게 썬 사과 몇 쪽을 올려보자. 그 정도 호사는 당신의 췌장도 웃으며 허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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