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대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이 62만개(61조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오(誤)지급한 사태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지급된 비트코인은 빗썸이 실제 보유한 것보다 15배 많은 규모로, 이를 가능하게 한 이른바 ‘장부 거래’ 시스템의 위험이 도마에 올랐다. 최근 가상자산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인해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신뢰가 더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가 주주환원도 역대급을 확대하며 ‘주주환원 50%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총 8조6000억원에 달하는 환원 금액의 60% 이상이 외국인 투자자 몫인 데다, 배당을 챙긴 이들이 최근 대규모 증시 이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2000원 주려다 2000비트코인…‘유령 코인’ 61조 만들어 뿌렸다
8일 빗썸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빗썸은 지난 6일 오후 7시쯤 ‘랜덤박스’ 이벤트 당첨자 249명에게 1인당 2000∼5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려다 시스템 입력 오류로 1인당 약 2000비트코인(약 1970억원)을 발송했다. 지급된 규모는 총 62만비트코인, 한화 약 61조700억원이다.
이를 받은 고객들이 현금화하기 위해 시장에 매물을 쏟아내자 빗썸 내에서 9800만원대에 거래되던 비트코인 가격은 같은 날 오후 7시30분쯤 8111만원까지 급락했다.
오지급된 비트코인 62만개 중 61만8212개(99.7%, 약 60조8938억원 상당)는 거래가 이뤄지기 전에 회수됐고, 이미 매도된 비트코인 1788개에 대해서도 93%가 회수됐다. 미회수 비트코인은 약 126개 상당(약 123억원)으로 추산된다.
주목할 것은 62만개 중 빗썸이 실제 보유한 비트코인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75개, 회원 위탁 비트코인 4만2619개라는 점이다. 빗썸이 보유한 코인의 15배를 지급할 수 있었던 것도, 빠른 회수는 가능했던 것도 장부거래 시스템 때문이었다.
가상자산 거래는 24시간 내내 초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거래소 콜드월렛(오프라인) 지갑에 보관 중인 실제 가상자산 수량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거래가 발생하면 일단 내부 전산, 즉 장부에 숫자만 기록한 뒤 나중에 지갑에서 출금해 자산 수량을 맞춘다.
빗썸이 이벤트를 위해 코인을 상한선 없이 지급한 점 등은 제도권 금융기관이라면 있을 수 없는 내부통제 미비라는 비판이 나온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장부 기반 거래는 은행·증권도 똑같이 쓰고 있는데, 빗썸은 잔고 여부를 검증하는 과정이 없었던 것이 문제”라며 “교차검증,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 등의 구조적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빗썸 측은 오지급에 따른 피해 보상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빗썸 측은 이날 “이미 매도된 0.3%(1788 비트코인)에 대해 회사 보유자산을 투입해 고객 예치 자산과 거래소 보유자산 간 100% 정합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회수하지 못한 126개 비트코인을 되찾기 위해 개별 계좌주들과 계속해서 접촉 중이다. 회수가 여의치 않을 경우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 등 법적 조치 단계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빗썸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빗썸 관계자는 “법적 조치는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최대한 고객들에게 안내하고 설득해 회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빗썸은 1000억원 규모의 고객 보호 펀드를 상설화해 만약의 사고에도 고객 자산을 구제할 수 있도록 하고, 이번 사고로 인해 손해를 본 고객에게 비트코인 매도 차익 전액과 10%의 추가 보상을 지급할 계획이다. 9일 0시부터 일주일 동안 전체 종목 거래 수수료도 면제한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이억원 위원장 주재로 금융정보분석원(FIU)·금융감독원과 긴급점검회의를 열고 빗썸 사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거래소의 내부통제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난 만큼, 빗썸뿐만 아니라 모든 거래소의 내부통제 전반을 점검하고 적절한 내부통제 체계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를 중심으로 모든 거래소의 내부통제 전반을 점검하고, 결과를 토대로 금감원이 현장 점검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위법사항이 발견될 경우 빗썸이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2018년 4월 우리사주 배당금을 주당 1000원씩 지급하려다 직원 실수로 자사주 1000주씩을 지급한 삼성증권 사태 당시 금융당국은 일부 영업정지 6개월, 1억44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2단계법을 통해 거래소에 금융사에 준하는 내부 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전산사고 등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면 가상자산사업자의 무과실책임을 규정하는 방안 등을 추진한다.
◆5조원 배당 챙긴 외국인, 국장 떠날 땐 경제 ‘충격’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의 지난해 주주환원율은 KB금융(52.4%), 신한금융(50.2%), 하나금융(46.8%), 우리금융(39.8%)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8조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거둔 덕에 주주환원율도 올라갔다. 이들 그룹은 일제히 대규모 주주환원 정책을 예고했다.
금융지주들의 역대 최대 실적은 전체 영업이익 중 80% 내외를 차지하는 이자 수익에 힘입어 가능했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은 각각 약 13조원과 12조원의 순이자이익을 냈다. 4대 은행이 거둔 이익 대부분은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예대금리차에서 나왔다. 이번 실적 발표를 통해 4대 금융은 은행 및 계열사 이자 이익 성장 배경에 대해 공통적으로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대출자산 증가로 이자 이익을 방어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방침에 따라 대출증가율이 둔화됐음에도 이자 이익이 성장한 것은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 기조 속에도 가계대출 금리를 신속하게 내리지 않고 예금 금리는 빠르게 낮춰 수익을 극대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처럼 고금리 터널을 지나는 서민과 중소기업이 지불한 이자로 쌓은 이익 상당수가 4대 금융 지분 약 63%를 가진 외국인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셈이 됐다는 지적이다. 금액으로는 8조6000억원 중 5조원 이상에 해당한다. 2025년 8월 기준으로 KB금융의 외국인 지분이 77.6%로 가장 높고, 이어 하나금융(66.80%), 신한금융(59.78%), 우리금융(47.05%) 순이었다.
국내 금융지주들의 주주환원 강화 움직임은 미국 4대 은행의 매우 높은 주주환원 정책(2024년 평균 83.8%)과 비교돼 온 측면과 정부의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이자 장사’ 지적에 따른 대응 등으로 추진돼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막대한 배당금을 챙긴 후 한국 증시를 떠날 경우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가 아닌, 외국인 자본에 퇴로를 열어주는 형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서 창출된 부가 재투자되지 않고 해외로 유출될 경우 결과적으로 은행의 자본 여력을 깎아먹고, 정작 필요한 국내 실물 경제에 대한 대출 공급이나 상생 금융 여력을 축소시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에 발표한 4대 금융의 주주환원 정책은 지난해 1∼3분기 이뤄진 배당 외에 올해 4월에 있을 결산 배당, 상반기 안에 실시할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중 수익을 극대화하고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국내 증시에서 무려 11조101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차익실현에 의한 일시적 조정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외국인의 매도세는 극심한 변동성을 야기하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 5일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5조원을 순매도했는데 일간 사상 최대 금액”이라며 “본격 셀코리아 신호가 아닌지와 같은 불안감을 시장에 던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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