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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내고 러닝머신 뛰면서 공짜 계단은 왜 피하나?”…헬스장 ‘기부천사’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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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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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대·미국 툴레인대 연구…하루 3회 ‘거친 숨소리’가 사망 위험 40% 낮춘다
매일 50계단, 5분 투자로 심혈관 질환 20% 뚝…허벅지 근육은 10년 뒤 뇌 지키는 방패
전문의들 “운동은 이벤트가 아니라 생존 습관이다”…일상 속 ‘1분의 고통’ 즐겨야 산다

“잠시 후 열차가 들어옵니다.”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는 붐비지만 계단은 비교적 한산하다. 전문가들은 하루 50계단 오르기가 심장병 예방의 지름길이라 조언한다. 게티이미지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는 붐비지만 계단은 비교적 한산하다. 전문가들은 하루 50계단 오르기가 심장병 예방의 지름길이라 조언한다. 게티이미지

6일 오전 8시 20분, 서울 용산역 1호선 승강장. 안내방송과 함께 회색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온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 장면이다. 수백 명의 인파가 약속이라도 한 듯 에스컬레이터 앞에 길게 줄을 선다. 바로 옆 텅 빈 계단은 마치 ‘금지 구역’이라도 된 것 같다.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다 에스컬레이터 줄에 서 있는 직장인 박민수(32·가명) 씨에게 말을 걸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기자가 “계단이 비어있는데 왜 기다리느냐”고 묻자, 박 씨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침부터 땀 빼면 찝찝하잖아요. 어제 큰맘 먹고 회사 근처 헬스장 3개월 끊었는데, 야근하느라 못 갔거든요. 거기 돈 낸 거 생각하면 여기서라도 좀 편하게 가야죠.”

 

박 씨의 대답에 현대인의 아이러니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운동’이라는 이벤트를 치러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공짜로 주어진 가장 확실한 운동 기구인 ‘계단’은 외면한다. 과연 ‘각 잡고’ 하는 운동만이 정답일까. 과학의 대답은 명쾌하다. 당신이 귀찮아서 피한 그 계단 한 칸에 10년 뒤의 뇌 건강과 생존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헬스장 1시간보다 강력한 ‘1분의 거친 숨’

 

현대인은 ‘운동 강박’과 ‘실천 부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헬스장에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하지만 최근 의학계는 ‘지속 시간’보다 ‘강도’에 주목하고 있다.

 

2022년 호주 시드니대 에마뉘엘 스태마타키스 교수팀이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헬스장 기부천사들에게 복음과도 같다. 연구팀은 따로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일상에서 하루 3~4번, 딱 1분씩만 숨이 찰 정도로 움직이는 ‘고강도 간헐적 생활 신체활동(VILPA)’을 실천하면 암과 심혈관 질환 사망률이 40%나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헬스장에서 1시간 걷고 나머지 23시간을 좌식 생활로 보내는 것보다, 버스를 잡으려 전력 질주하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두 칸씩 오르는 ‘날 것의 움직임’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장이 “나 지금 일하고 있어!”라고 비명을 지르는 그 짧은 순간이 핵심이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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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계단’의 마법…심장을 튜닝하다

 

서울 강남의 한 재활의학과 원장은 “환자들에게 운동하라고 하면 다들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댄다”며 “하지만 계단은 도시가 제공하는 최고의 무료 헬스장”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평지를 걸을 때는 엉덩이 근육을 거의 쓰지 않지만, 계단을 오를 땐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폭발적으로 개입한다”며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비로소 심폐 기능이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일상 속 짧지만 강렬한 움직임은 따로 시간을 내는 운동 못지않은 건강 효과를 낸다. 계단 오르기는 뇌 건강을 지키는 가장 쉬운 투자다. 게티이미지
일상 속 짧지만 강렬한 움직임은 따로 시간을 내는 운동 못지않은 건강 효과를 낸다. 계단 오르기는 뇌 건강을 지키는 가장 쉬운 투자다. 게티이미지

실제로 미국 툴레인대 연구진이 45만명을 12년 넘게 추적 관찰한 결과, 하루에 딱 50계단(약 5층)만 올라도 심혈관 질환 위험이 2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창한 목표는 필요 없다. 점심시간에 식당 3층까지 걸어 올라가거나, 지하철역 출구 계단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은 튜닝된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심박수를 끌어올리는 ‘밀도’다.

 

◆허벅지가 얇으면 뇌도 쪼그라든다

 

더 섬뜩한 사실은 하체 부실이 뇌 노화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쌍둥이들을 1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다리 근력이 좋은 형제가 그렇지 않은 형제보다 10년 후 인지 능력이 월등히 높았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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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하체 근육은 제2의 심장 역할을 하며 뇌로 가는 혈류량을 늘리고, 염증 물질을 줄여 뇌세포 사멸을 막는 방패가 된다. 즉, 지금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스마트폰을 보는 편안한 1분은 미래의 인지 기능을 갉아먹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시 지하철 계단을 올랐다. 숨이 가쁘고 허벅지가 뻐근해진다. 이 불쾌한 통증이야말로 내 몸이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적금이다. 헬스장 회원권은 3개월 뒤 만료되지만, 오늘 밟은 계단이 만든 근육은 평생을 간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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