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효자면 뭐하나, 우리 애 반찬도 못 줄 판”…치솟는 원초값에 ‘내수 차별’ 논란까지
뜨거워진 바다에 말라가는 김 양식장…식품업계, 지금 빌딩서 김 키우는 ‘육지 김’ 전쟁중
5일 서울의 한 재래시장 건어물 상가. “아이고, 김 가격 묻지 마시오. 나도 파는 입장에서 민망해서 그래.”
30년째 건어물을 취급하는 상인 박모(68) 씨가 손사래부터 쳤다. 진열대 앞을 서성이는 손님들은 가격표를 보고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김 봉지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만원 한 장이면 두둑하게 챙기던 김이, 이제는 큰맘 먹고 지갑을 열어야 하는 ‘사치재’가 되어버렸다.
박 씨네 가게 앞을 지나던 일본인 관광객 무리가 “오이시(맛있다)”를 연발하며 조미김 10박스를 카트에 쓸어 담았다. 그 바로 옆에서 콩나물 값 500원을 깎으려 실랑이하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빈 장바구니가 유독 초라해 보였다. 세계 시장 점유율 70%, 수출 1조원 돌파라는 화려한 ‘K-푸드’의 성적표 뒤에는, 정작 안방 식탁은 챙기지 못한 ‘수출의 역설’이 서늘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바다가 펄펄 끓어”…어민의 한숨, 검은 눈물이 되다
현장의 비명은 서울 한복판보다 남쪽 끝 바다에서 더 처절했다. 전남의 한 김 양식장. ‘검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황금어장이 아닌 기후 재난의 최전선이었다.
검붉게 윤기가 흘러야 할 김발은 누렇게 뜬 채 축 늘어져 있었다. 고수온으로 인한 ‘갯병(황백화 현상)’이다. 어민 이모(58) 씨가 김발을 들어 올리자 힘없는 김 엽체들이 뚝뚝 끊어져 바다로 떨어졌다.
“보시오. 이게 김이요? 썩은 풀이지. 바닷물이 차가워야 김이 딴딴하게 여무는데, 겨울 바다가 목욕물마냥 미지근하니 다 녹아버리는 거요.”
이 씨의 목소리가 배 엔진 소리에 묻혀 갈라졌다. 그는 “작년보다 수확량이 40%는 줄었다. 물건이 없는데 공장에서는 웃돈 줄 테니 달라고 난리다. 이게 정상인가”라고 반문했다. 김은 흐물거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바다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바다가 아니었다.
◆식탁 주권 위협하는 ‘기후 플레이션’
현장에서 확인한 김 가격 폭등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는 넷플릭스발 ‘K-김밥’ 열풍으로 인한 수출 쏠림 현상이지만, 그 기저에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중품 마른김 10장 가격은 1515원으로 마지노선이라 여겼던 1500원 벽을 깼다. 현장 체감가는 더 잔혹하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최상급 곱창김 한 톳(100장)은 3만5000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다. 장당 350원. 이제 아이들 밥반찬으로 김 한 장 꺼내기가 무서운 세상이 온 것이다.
◆바다 떠나 빌딩으로…‘육지 김’이 대안 될까
바다가 배신하자 기업들은 땅으로 올라왔다. 풀무원, 대상 등 식품 대기업들은 충북 괴산 등 내륙 깊숙한 곳에 ‘김 스마트팜’을 짓고 있다. 바닷물 대신 배양액을 쓰고, 태양 대신 LED 조명을 비춰 김을 키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제 자연에 기대어 김을 얻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며 “반도체 공장처럼 통제된 환경에서 김을 찍어내야만 식탁 물가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상용화되어 서민의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술 비용이 고스란히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뒤늦게 비축 물량을 풀고 할인 지원에 나섰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당장 눈앞의 가격표만 쳐다볼 게 아닌 기후 변화에 적응할 신품종 개발과 내수 물량 보호를 위한 쿼터제 등 근본적인 ‘식탁 안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수출 대박이라는 환호성 속에, 정작 우리 아이에게 먹일 김 한 조각이 귀해지는 이 기현상. 이것은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닌 기후 위기가 우리 밥상을 어떻게 점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경고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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