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 12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유엔의 인도주의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20억달러(약 2조8700억원)의 자금을 출연한다고 밝혔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 한 해 동안 미국이 지출한 유엔 인도주의 프로그램 지원금이 170억달러(24조3900억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12%에 불과한 20억달러는 별로 큰 돈도 아니다. 하지만 유엔을 대놓고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돈줄이 마른 유엔으로선 감지덕지할 만하다. 영국 외교관 출신인 톰 플레처 유엔 긴급구호 담당 사무차장은 “그 돈으로 수백만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액수는 전보다 훨씬 줄었는데 요구 사항은 엄청나게 늘었다. 미 국무부는 해당 지원금이 아이티, 시리아, 수단 등 17개국을 위해서만 사용돼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아프가니스탄과 예멘은 콕 집어 배제했다. “미국인의 세금이 테러 단체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이 낸 지원금이 기후 변화 대응 프로그램에 쓰이는 것도 금지했다. 트럼프는 ‘기후 변화’란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미 국무부는 트럼프가 새로운 국제 질서를 주도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유엔을 향해 “(새 질서에) 적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신랄한 독설을 내뱉었다.
사실 요즘 유엔은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회원국들이 내는 분담금이 모여 곧 유엔의 예산이 되는데, 미납 분담금이 엄청나게 늘어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른 것이다. 경제 규모로 세계 1위인 미국은 유엔 예산의 20% 이상을 책임진 최대 분담국이다. 그런데 지난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정규 분담금을 전혀 납부하지 않고 있다.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한 지원금의 30%만 보냈을 뿐이다. 곳간이 텅 빈 유엔은 물가가 비싼 미국 뉴욕을 떠나 타국으로 본부를 옮기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 행정부는 “절대 불가한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트럼프가 1일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유엔의 재정난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유엔 분담금을 미납한 국가들에 내가 전화를 한 번씩 걸기만 하면 된다”며 “당장 몇 분 내로 수표를 입금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초강대국의 힘을 앞세워 ‘갑질’을 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정작 미국이 납부해야 할 미납 분담금이 가장 많다는 기자의 지적에 트럼프는 “내가 모르는 사실”이라며 시치미를 뗐다.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미국부터 밀린 유엔 분담금 빨리 좀 내라”고 독촉할 외국 지도자는 없을까. 러시아나 중국 정상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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