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의 공공성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종교학에서 말하는 ‘세계종교’란 특정 민족이나 지역에 갇히지 않고, 다문화·다인종 사회 속에서 뿌리를 내리며, 보편적 세계관과 윤리를 제시하고 지속 가능한 조직과 교리를 갖춘 종교를 뜻한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통일교는 더 이상 ‘지역 종교’나 단순한 ‘신흥종교’로만 규정되기 어렵다. 통일교는 이미 195개국에 정식 등록되어 활동하는 세계적 종단으로, 미주·유럽·아시아·아프리카 전역에 현지인 지도자 중심의 조직을 구축해 왔다.
해외 종교사회학자들의 평가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의 종교사회학자 아이린 바커는 통일교를 “국가 이전의 혈연·국적·인종을 초월하도록 설계된 신앙 정체성을 신자에게 부여하는 드문 종교운동”으로 분석했고, 옥스퍼드 대학의 브라이언 윌슨은 통일교가 개인의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냉전 질서와 공산주의, 나아가 세계 정치 구조 전반에 대해 일관된 대안적 해석 체계를 제시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세계종교가 갖추어야 할 핵심 요건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토머스 로빈스는 통일교를 “비서구권에서 출현해 서구 중심부로 진입한 가장 야심찬 세계종교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평가했으며, 데이비드 브롬리는 이를 ‘초국가적 종교 네트워크’의 대표적 사례로 분석한다. 교단 조직뿐 아니라 NGO, 학술기관, 언론, 평화기구가 하나의 유기적 생태계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통일교를 시대에 맞게 네트워크화된 21세기형 세계종교 모델로 위치 짓게 한다.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국제적 활동은 이러한 세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세계성은 통계나 행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그것을 살아낸 사람들의 증언이 이를 증명한다. 중국 등지에서 해외 선교사로 활동했던 한 통일교 성직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프리카에서 2년간 선교활동을 했는데, 어느 나라든 오지에도 통일교 축복가정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축복가정 2세 자녀들은 거의 다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70여 명의 아기 이름을 지어주었고, 8년이 지난 뒤에도 “동생이 태어났으니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형의 이름을 물어보고 돌림자를 맞춰 이름을 보내주었다는 이 증언은 통일교의 세계성이 제도나 조직의 확장 차원을 넘어 세계인의 삶 깊숙한 자리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종교의 성취는 신도 수의 많고 적음보다 삶의 가장 사적인 순간을 기꺼이 맡길 수 있는 신뢰가 형성되는 데서 확인된다. 아이의 이름을 부탁하는 장면은 바로 그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축적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통일교는 자신을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을 메시아로 바라보는 종교”, “맞고 빼앗긴 것을 사랑으로 갚는 참사랑의 종교”라고 규정해 왔다. 해외 선교 현장에서 지도자가 신도 개개인의 사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건강과 생활을 걱정하며 말없이 생활비를 건네는 모습이 마치 타지에서 고생하는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았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이러한 윤리적 태도와 생활 속 실천은 통일교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오랜 시간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통일교를 ‘자산’으로 논의한다는 것은 세계종교로 성장한 종교 공동체를 공공의 영역 안에서 어떻게 성숙하게 이해하고 연결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여기서 ‘자산’이란 보호나 면책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잠재력과 공공적 가치를 사회 전체의 성숙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에 가깝다. 세계종교라면 이러한 기대를 마땅히 성장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사회와 책임 있게 호흡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통일교를 한국의 자산으로 논의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에서 출발한 사상과 종교 운동 가운데 통일교만큼 장기간에 걸쳐 전 세계의 정치·종교·시민사회 영역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온 사례는 흔치 않다. 이는 한국 사회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독자적 언어와 네트워크를 이미 상당 부분 축적해 왔음을 보여 준다. 외교의 영역 역시 정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문화와 종교, 시민사회가 함께 작동할 때 국가의 소프트 파워는 보다 깊고 입체적으로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이 가치를 지켜 나갈 책임은 교단만의 몫이 아니라, 국가와 우리 사회 전체에 함께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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