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
원·달러 환율도 24.8원이나 급등
美증시 약세에 금·은 ‘쇼크’… 코스피 하루 227조 증발
美 워시, 매파·비둘기파 기대 공존
불확실성 높아져 증시 자금 이탈
금·은값 폭락으로 담보 가치 하락
증거금 메우려 주식 청산 쏟아져
외국인·기관 투자자 4.7조원 매도
삼전 6.29%·하이닉스 8.69% 하락
“펀더멘털 아닌 수급 발작” 분석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 지명에 국내외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새해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던 코스피는 5000선 아래로 떨어지며 시가총액 227조원이 줄었고, 전 세계 금·은 시장에서는 7767조원이 증발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매에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20원 넘게 급등했다.
2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274.69포인트(5.26%) 내린 4949.67에 장을 마쳤다. 지수는 전장 대비 101.74포인트(1.95%) 내린 5122.62로 출발해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장 초반 5196.71까지 회복했지만 이후 하락폭을 키우며 장중 4933.58까지 밀렸다. 낮 12시31분엔 지수가 급락하면서 프로그램 매수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피에 매도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지난해 11월5일 이후 석달 만이다. 코스닥 지수도 51.80포인트(4.44%) 내린 1098.36에 장을 마쳤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는 무려 4조7000억원어치의 매도 폭탄을 던지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도액은 각각 2조5168억원, 2조2126억원을 나타냈다. 개인이 홀로 4조5874억원을 순매수했지만 지수 방어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코스피 시장 급락에 전체 시총은 4091조1117억원을 기록하며 전 거래일(4318조6471억원) 대비 약 227조원이 줄었다.
종목별로는 지수를 이끌어 왔던 반도체 업종의 조정이 컸다. 삼성전자가 6.29% 하락한 15만400원에 거래를 마쳤고, SK하이닉스는 8.69%나 빠지며 83만원이 됐다. 그외 현대차(-4.40%), LG에너지솔루션(-4.52%), 삼성바이오로직스(-1.95%), SK스퀘어(-11.40%), 한화에어로스페이스(-4.69%) 등 시총 상위종목들이 대부분 약세를 보였다.
이날 증시의 급락은 ‘워시 쇼크’가 불러온 불확실성의 여파로 풀이된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가 차기 의장으로 지명되면서 시장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워시 지명자의 과거 ‘매파’(통화 긴축 선호) 이력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 후퇴와 유동성 위축이 우려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인 만큼 완화적 스탠스를 취할 수 있다는 ‘비둘기파적 기대’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차기 연준의 정책 경로를 둘러싼 해석이 충돌하며 불확실성이 증폭되자 과열 양상을 보이던 자산 시장에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됐다. 특히 은과 금 가격의 급락이 레버리지 투자의 담보가치 하락으로 이어졌고, 증거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강제 청산 물량이 주식 시장으로 쏟아지며 변동성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439.50)보다 24.8원 오른 1464.3원(오후 3시30분 기준)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는 금·은 가격이 이틀 연속 폭락하면서 국내 시장도 일제히 주저앉았다. 이날 KRX 금시장에서 1㎏짜리 금 현물의 1g당 종가는 가격제한폭인 10%(2만5300원)까지 급락해 하한가(22만7700원)를 기록했다. 미국 코멕스(COMEX)의 은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국내 상장지수펀드인 ‘코덱스(KODEX) 은 선물’도 전장보다 30% 폭락하며 하한가에 장을 마쳤다. 지난달 30일 하루 폭락으로 국제 금·은 시장에서 증발한 시총만 약 5조3600억달러(약 776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일본 닛케이255 지수와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홍콩 항셍지수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대부분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폭락이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의 문제보다는 그간 누적된 피로감에 대외 악재가 겹치며 발생한 ‘수급 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 1월 한 달간 코스피가 24% 넘게 오르며 쌓인 피로감이 악재를 만나 과도한 투매로 번졌다고 분석했다. 한 연구원은 “지수 상승 속도에 부담이 있는 구간이라 숨고르기성 조정 가능성은 열어두는 게 맞지만, 하루에 4~5%씩 빠지는 것은 과도한 감이 있다”며 “국내 강세장의 동력인 이익 모멘텀과 낮은 밸류에이션 부담이라는 재료는 변하지 않은 만큼 지수가 5% 가까이 빠지는 시점에서 패닉셀링에 동참하는 전략은 실익이 크지 않다”고 짚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하락장을 차익실현 욕구와 원자재발 악재의 결합으로 풀이했다. 이 연구원은 “워시 전 연준 이사의 차기 의장 지명이 시장에 차익실현의 명분을 줬고, 은 등 원자재 가격 급락이 변동성을 키웠다”면서도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9.4배 수준에 불과해 밸류에이션 매력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폭락장 속에서도 대신증권은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5300에서 5800으로 상향 조정하며 펀더멘털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였다.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근거다. 이경민 연구원은 현재의 변동성을 2월 중 나타나는 매물 소화 과정으로 진단하며 “3차 상법 개정안 등 정책 모멘텀이 더해질 경우 3월부터는 다시 상승 추세가 재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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