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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敵)의 목을 베고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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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어요, 단 한 번의 실수로 추락해서 죽을 수도 있지 않나요?” 프리 솔로 클라이머 알렉스 호놀드에게 쇼 호스트의 질문이 던져진다. 호놀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한다. “네, 잘 알고 계시네요.” 지미 친의 다큐멘터리 ‘프리 솔로’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푸티지 장면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과거 호놀드가 900m 높이의 엘 캐피탄 수직 벽에 오르는 도전이 담겨 있다. ‘프리 솔로’란 어떤 장비 없이 맨몸으로 등반하는 스타일을 이른다. 등반가의 약 1%만이 프리 솔로 스타일을 시도하며 알렉스 호놀드는 이 분야에서 전설적인 존재다. 그가 지난 일요일 타이베이 101을 프리 솔로잉으로 등반했다. 여러 논란을 뒤로하고 대만 도심의 초고층 빌딩을 오르는 그의 모습이 넷플릭스를 통해 중계되었다. 논란의 중심은 빌딩을 오르다 추락사할 수도 있는 위험한 스포츠를 생중계한다는 데 있었다.

암벽 등반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정상으로 향하는 이들이다. 몇 해 전, 여러 편의 등반 다큐멘터리를 보며 알게 된 하나는 높은 곳으로 오르는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나는 그때 끝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전쟁 생존자 다음으로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넷플릭스 중계에서 대중 심리를 대변하듯 사회자가 수차례 언급하는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프리 솔로잉을 ‘죽음 충동’에 가까운 행위라고 말하는 것과 정반대로 그가 장비 없이 암벽을 오르는 일은 ‘프리 솔로’에서도 드러나듯 교만이나 죽음 충동과 거리가 멀다. 엘 캐피탄을 오르는 프로젝트는 여러 전문가와의 협업을 거쳐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로프를 메고 신뢰하는 선배 등반가에게 리드를 맡기며 루트를 짜고 피치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호놀드는 신중하게 계산하고 숙고한다. 로프 없이 등반하는 동안에 온몸으로 죽음을 실감한다는 그에게 완전한 집중력과 심리적 무장은 완등을 가능하게 하는 체력만큼이나 필요한 것이다.

 

‘적장의 목을 베어 들고 장수가 가는 곳이 바로 길’이라고 ‘길 도(道)’자를 설명한 선생님의 말씀이 어렸을 땐 이해되지 않았다. 모두가 가야 하는 길을 장수의 일로 한정 지어 비유한 까닭을 알게 된 건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타이베이 101을 완등한 그에게 사회자와 패널이 “오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라고 번갈아 묻자 그는 “페이스 조절에 힘쓰려 했다”고 답한다. 질문에서 기대한 말은 프로 등반가로서의 답변만이 아니라 보다 평범한 인간의 심정적 토로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본다. 만일 그가 8000m 봉에 오르는 등반가였다면 희박한 산소의 텐트 속에서 가끔 고통을 어루만지는 밤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비도, 동료도 없이 자신만의 길을 가는 그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위를 보며 오르는 그 시간만은 두려움과 안이함, 만용의 목을 베고 하물며 인간사의 정마저 모두 잊고서 그가 홀로 전진한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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