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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인팩코리아 대표 “성공은 한 순간… 나눔과 봉사, 돈 안 돼도 인생에 남는 장사죠”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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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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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TV 세계 1위 만든 주역
어령도 섬소년, 선박설계자 직장 첫 발
1985년 삼성 스카웃 뒤 밤낮없이 혁신
1992년말부터 10년 일본 주재원 생활
전자상거래로 LCD 액정 판매 대성공
국내 복귀 뒤 세계 첫 LCD TV 선봬

인생 후반 신사업 설계하다
일에 매몰돼 건강 잃고 마음 공허해져
‘마음의 세수’ 명상 통해 삼성 퇴사 결단
“주변 도움받아 이룬 것 나누겠다” 결심
조계사 신도회 총회장 맡아 ‘보시’ 생활
탑골공원 청소·노숙인 쉼터 등에 기부

‘삼성TV 1위 신화의 주역’, ‘아키하바라의 자존심을 꺾은 삼성맨’. 이승현(67) 인팩코리아 대표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삼성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삼성전자 임원으로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 대표를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이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원한 삼성맨’이다.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삼성의 일본 주재원 시절 가전업계 대세였던 소니TV를 꺾고 삼성TV 세계 1위의 신화를 만든 주역이다. 삼성일본 신규 사업팀장을 맡은 그는 당시로서는 낯선 전자상거래를 처음으로 적용해 삼성 액정제품을 판매해 일본 산업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에서 실적을 인정받은 그는 국내로 복귀해 삼성 LCD TV 사업 PM그룹장으로 삼성TV의 세계 1등 시대를 여는 중추역할을 했다.

이승현 인팩코리아 대표는 섬 소년 출신으로 삼성 LCD TV 세계 1위의 기틀을 닦은 성공신화의 주역이다. 샐러리맨으로 젊은 시절 최고 성공을 맛본 이 대표는 지난 20일 인터뷰에서 “인생 후반에 찾은 ‘신사업’이 주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나눔과 봉사”라며 “돈은 되지 않지만 내 마음의 평화를 주고 주변을 이롭게 하는 ‘인생의 남는 장사’”라고 설명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삼성을 나온 지 꽤 시간이 흐른 2023년, 그는 당시의 좌절과 성공 기록을 담은 책 ‘최강 소니TV 꺾은 집념의 샐러리맨’을 냈다. 책은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알려진 중년남성 독자가 많이 찾았고, 언론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지금은 독립해 글로벌 부품사 대표로 있는 그의 책상 앞에는 ‘자신을 움직이는 것은 야심(野心)이지만 남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眞心)’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인생 후반은 야심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살겠다’는 그의 다짐이다.

젊은 시절 삼성맨으로 빛나는 성취의 기쁨과 영광은 잠시였다. 마음은 공허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가 인생 후반에 찾은 ‘신사업’(?)이라 부르는 것이 ‘나눔과 봉사’다. 탑골공원과 서울역 노숙자 쉼터에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고, 이들을 상담하고 배식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일을 10여년간 해오고 있다. 2023년부터는 조계사신도회 총회장을 맡아 그의 말대로 ‘보시(布施)’를 실천하며 살고 있다.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일 서울 남부터미널역 인근 인팩코리아 사옥에서 이 대표를 만나 삼성맨 시절의 도전과 성공, 그가 ‘인생 후반의 신사업’이라고 말하는 나눔과 봉사의 삶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승현 대표가 새벽에 탑골공원을 찾아 청소하고 있다. 조계사신도회 제공

-어룡도 섬 소년이 출세한 셈이다. 젊은 시절 ‘삼성맨’으로 성공신화를 썼다.

“제 고향은 해남 땅끝마을 건너 작은 섬이다. 정확히는 완도군 노화읍 어룡도다. 수시로 바다에 나가 친구들과 수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큰 파도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긴 일도 있다. 날씨가 변화무쌍한 바닷가 출신이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모험심과 호기심이 많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때부터 이순신 장군을 동경하며 ‘거북선 같은 군함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웠다. 자연스럽게 경남공고를 거쳐 울산과학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배 만드는 현대중공업에 들어갔다. 이후 대우조선·삼성중공업으로 옮겨 선박 설계 등을 담당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주 내 상사의 신임을 받았다. 1985년 삼성에 스카우트돼 ‘삼성맨’이 됐다. 당시 이건희 회장님의 신경영을 위한 혁신 방침이 저의 성취욕과 잘 맞았다. 밤낮없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며 일만 했다”

-일본 주재원으로 당시 세계 1위인 소니TV를 꺾어 업계에서 화제가 됐는데.

“1992년 말부터 삼성전자 일본 주재원으로 10년간 근무했다. 당시 ‘전자(電子) 종주국’인 일본이 나아가는 방향과 현재 상황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조사해 본사로 보내는 게 내 역할이었다. 이건희 회장님이 1999년 도쿄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 가셨는데, 삼성 제품이 없자 크게 노하셨다. “삼성이 일본에 진출한 지 50년이나 됐는데, 왜 아직 삼성 제품이 없느냐”고 질책했다. (삼성물산 동경법인은 1953년 11월에 설립됐다) 사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삼성 제품은 그저 그랬다. 일본 전자상가에서는 제품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고 싸구려 취급을 했다. 신규 사업팀장으로 전자상거래로 삼성 LCD(액정) 모니터를 팔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도전이었다. 이게 성공을 거뒀다. 국내 복귀 후에는 대형 모니터 기술로 LCD TV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은 LCD가 대세이지만, 그때만 해도 일본의 소니와 도시바, 파나소닉, 샤프가 디지털 TV의 표준을 놓고 사생결단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세계 최초의 초대형 LCD TV 개발로 일본 업체를 제압하고 세계 1등 TV 메이커가 됐다. 이런 성공을 거두니 일본은 물론 세계가 삼성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

이승현 대표가 탑골공원 내 무료배식소에서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조계사신도회 제공

-이건희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이 회장에게 “회장님, 왜 마누라는 빼라고 하셨느냐”고 물어본 간 큰 ‘삼성맨’이었다 하는데.

“오사카 주재원으로 있을 때다. 이 회장님이 신경영 지휘를 위해 뉴오타니호텔에서 자주 머무셨다. 그때만 해도 30대로, 호기심 많고 겁없는 임원이었다. 회장님을 뵐 기회가 생겨 왜 그 말씀을 하셨느냐고 여쭤봤더니 “자식과 아내는 가장(家長)이 열심을 일하게 하는 동기이자 원천인데 어떻게 바꾸나. 그건 말도 안 된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우문현답이었다.”(웃음)

-불교 신자로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이 ‘인생 신경영’이라고 부른다는데.

“젊은 시절은 누구나 야망이 넘치기 마련이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해서 임원 승진이나 실적 1위 등 여러 성취를 맛봤지만, 영광의 순간은 잠시다. 일에 ‘올인’하다 보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건강을 잃은 데다 마음은 늘 공허했다. 지금 와서 보니 세상의 성공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치열하게 살던 젊은 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나눔과 봉사다.”

-명상 전도사로 많이 알려져 있다. 명상을 하게 된 계기는.

“오사카 주재원 시절이다. 1995년 1월17일 새벽,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었다. 잠을 자던 중 거친 진동을 느꼈고 일어나 보니 영화처럼 집이 기울어져 있었다. 나와 아내는 공포에 떨었으나 당시 주변의 이웃들은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주변의 적지 않은 이들이 재해 상황에 담담할 수 있는 비결이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을 한 덕이라는 걸 알았다. 일본 기업인을 만나게 되면 적지 않은 이들이 제게 명상을 권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때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명상을 통해 답을 얻는다고 했다. 그 후로 저도 명상을 생활화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더라도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가부좌를 튼다. 명상을 ‘마음의 세수’라 한다. 아침저녁으로 세수하듯 마음도 씻어낸다. 한창나이에 삼성전자를 그만둘 결심을 할 때 불안과 두려움이 컸다. 당시 아내와 합천 해인사에 머물며 명상을 통해 결단했다. 저는 불교 신자이지만 종교를 떠나 명상을 권하고 싶다. 아침저녁에 우선 1분이라도 가만히 앉아 생각을 가다듬으면 평안함이 찾아온다. 명상하는 이와 하지 않은 이의 차이는 작지 않다. 스티브 잡스도 명상을 했다.”

-주변이나 언론에 “내 돈 쓰고 내 몸을 힘들게 하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기부와 봉사뿐”이라고 즐겨 말하는데.

“어룡도 섬 소년이 서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이만큼 사는 것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룬 모든 것이 주변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죽으면 가져가지도 못한다. 청소년 폭력 예방재단에 20년째 기부하고 있고, 지역 대학생 장학금과 청소년 장학금도 오랜 기간 주고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단체에 지원하고 있다. 2023년부터 조계사신도회 총회장을 맡아 서울역과 탑골공원에 무료급식 봉사를 자주 한다. 배식도 하고 빗질과 걸레질도 즐겁게 한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개운하다. 3년 전 불자인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받은 조의금을 전액 기부해 낡고 허름한 원각사 무료급식소 급식시설을 깔끔하게 단장했다. 봉사를 갈 때마다 마음에 걸렸던 숙제를 끝낸 것 같아 기분이 홀가분했다.”

(이 대표는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무역협회자 부회장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도중 최근 기업 환경에 대한 걱정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기업인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많이 듣고 있다는데, 무엇이 그들을 힘들게 하나.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치열하게 변화와 혁신을 하는데 정부와 정치인이 발목을 잡고 있다. 심지어 기업들을 마치 적을 대하듯 하는 것 같다. 기업활동을 어렵게 하는 법이 너무 많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이다. 처벌을 우선하다 보니 사고만 나면 공장 문을 닫고 대표를 구속시킨다. 큰 기업은 변호사를 사서 대응하지만 작은 기업은 변호사 구할 돈이 없어 대표가 잡혀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외국기업들도 한국에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포션이 작지 않다. 외국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1%, 고용의 7%,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한다. 처벌과 통제 위주의 법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주 52시간제도 그렇다. 요즘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곳이 어딨느냐. 정해진 납품기간에 정해진 물량을 맞추려면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정해두면 절대 못 맞춘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3개월, 6개월 단위로 하는데 우리만 일주일 단위로 한다. 외국에서는 연봉 1억원을 넘으면 근로시간 제한도 안 받는다. 정부가 기업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봐야 한다.”

 

이승현 대표는…

 

●1958년 전남 완도 출생 ●울산과학대 기계공학과·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석사 ●1986~1989년 삼성전자 감사팀장 등 ●1992~ 2001년 삼성전자 일본주재 신규사업팀장 ●2001~ 2006년 LCD TV 초대 PM그룹장 등 ●2008년 1월~ (주)인팩코리아 대표이사 ●2017년 10월~2020년 2월 25·26대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 ●2021년 5월∼ 한국무역협회 부회장(비상근) ●2023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신도회 총회장 ●2025년 12월 철탑산업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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