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고조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에드워드 7세(1901∼1910년 재위)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프랑스 와인과 문화를 사랑했다. 그 시절만 해도 영국과 프랑스는 해외 식민지 확장 등을 놓고 치열하게 경합하는 사이였다. 1903년 프랑스를 국빈으로 방문한 에드워드 7세는 뛰어난 친화력으로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듬해인 1904년 영국·프랑스는 그간의 갈등을 뒤로 한 채 흔히 ‘앙탕트 코르디알’(Entente Cordiale)로 불리는 영·불 협약을 체결한다. 이는 유럽의 신흥 강국으로서 장차 영국을 제치고 패권국이 되려는 야심이 가득한 독일에 맞서 양국이 연합 전선을 펴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에드워드 7세의 증손녀 엘리자베스 2세(1952∼2022년 재위) 여왕이 즉위했을 때 국제 정세는 많이 변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영국·프랑스 등 유럽 열강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는 완전히 끝나고 대서양 너머 미국이 서방의 중심국으로 떠올랐다. 자연히 영국도 대외 정책에서 프랑스 대신 미국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의 재위 기간 동안 미국 대통령 13명과 만나며 2차대전 기간 확립된 양국의 동맹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1993∼2001년 재임)은 회고록에서 “여왕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성공적인 외교관이자 정치인인 사람 같았다”고 회상했다.
찰스 3세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스어 실력이 제법 뛰어난 편이다. 독일에서 오래 생활한 부친 필립 공(公)의 영향으로 독일어도 곧잘 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이후 사이가 멀어진 섬나라 영국과 유럽 대륙 간의 관계를 개선할 적임자로 찰스 3세가 꼽히는 이유다. 오죽하면 그에게 “영국 내각의 ‘비공식’ 유럽 담당 장관”이라는 별칭까지 붙었겠는가. 찰스 3세의 매력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제대로 발산되고 있다. 2025년 9월 찰스 3세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국 왕실의 극진한 의전과 접대에 “내 인생 최고의 영예”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는 올해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오는 4월 찰스 3세를 국빈으로 초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소유하려는 미국과 그를 반대하는 영국 간에 극심한 갈등이 불거졌다. 트럼프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군의 동맹으로 함께 싸운 영국군의 활약상을 폄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영국 정부와 의회가 발끈했고, 결국 트럼프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함과 동시에 “나는 영국군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외쳤다. 최근 영국 언론은 찰스 3세가 여러 경로를 통해 트럼프에게 직접 우려의 뜻을 전달한 것이 주효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영국 왕실의 ‘소프트 파워’가 이번에도 제대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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