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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기로 세상을 이롭게… 친환경·新기술로 또 다른 도약 [지방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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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강승우 기자 ks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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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 맞은 KERI

온난화 주범 SF6 대체 절연가스 개발
국내 업체 기술 이전 경쟁력 강화 나서
실시간 소방현장 시야 개선 기술 선봬
접근 힘든 재난 현장 안전한 구조 기대

세계 3번째 ‘전기선박 육상시험소’ 구축
3600t급 잠수함 장영실함 건조 큰 역할
미래형 ‘전고체전지’ 조기 상용화도 준비
저비용·대량생산 3가지 기술 검증 끝내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를 대체하는 친환경 가스를 개발한 곳은 어디일까? 연기가 가득한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이 쉽게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한 곳이 어디일까? 바로 한국전기연구원(KERI)이다. 경남 창원에 본원이 있는 KERI는 이름처럼 주로 전기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지금은 연구영역을 확장해 폭넓은 국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 전력기기를 다루는 세계 2위 수준의 국제공인시험인증기관으로서 막강한 경쟁력과 신뢰성도 확보하고 있다.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정부출연연구기관이지만 사실 이곳에서 수행하는 업무는 우리 일상과 아주 밀접하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전기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기치로 전기화 시대의 힘찬 도약을 준비하는 KERI의 주요 성과 및 목표를 살펴봤다.

국가 전력계통을 움직이는 두뇌 ‘EMS’ 국산화 기술. 한국전기연구원 제공

◆친환경 절연가스·실시간 시야개선 기술 개발

KERI의 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 단연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SF6(육불화황)를 대체하는 친환경 절연가스를 개발한 것이다. 15일 KERI에 따르면 SF6는 절연 성능이 우수하고 고장전류를 차단하는 아크소호 성능이 뛰어나 전력기기 분야에서 50년 넘게 사용돼 온 가스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의 2만3500배에 이르고 대기에 한 번 누출되면 3200년이나 존재하면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상기후의 주범이기도 하다.

세계 주요국들은 SF6를 대체할 만한 친환경 가스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신약 개발 이상의 난이도와 도전성이 요구돼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KERI 연구진은 친환경 절연가스 ‘K6’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K6는 지구온난화지수가 1 미만으로 환경친화적이고 심각한 독성 성분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가스를 전력기기에 적용하기 위해 필수조건인 ‘끓는 점’(영하 26도)도 낮아 대부분 지역에서 안정적인 기체 특성을 갖는다.

K6의 성능 시험까지 마친 KERI는 국내 전력기기 업체와의 기술이전을 통해 상용화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산업 현장과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친환경 가스의 폭넓은 활용을 위한 명확한 설계기준을 확립하는 등 국내 전력기기 업계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목표다.

‘실시간 소방현장 시야 개선 기술’도 KERI의 대표적 연구 성과 중 하나다. 이 기술은 화재현장의 짙은 연기 속에서도 시야를 확보해 준다. 연기나 열로 시야가 제한된 환경에서도 구조물과 사람의 형태 등 정보를 선명하게 복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소방대원용 휴대형 시야 개선 장비 시제품은 실제 훈련과 구조 임무에 활용한 결과 사용자 만족도와 현장 효과성 측면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기 부문의 연구기관이 이 같은 획기적 소방 기술을 개발한 연유는 무엇일까. 의료영상 진단기기와 수술장비의 화질을 개선하는 연구를 해왔던 KERI는 국립소방연구원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관련 기술을 공공안전 분야에 적용했다. KERI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제63주년 소방의 날 유공 정부포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연구팀은 더 나아가 이번 기술이 재난 대응 현장의 원격 영상 시스템으로 확장될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재난구조 현장에서도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시야 확보와 상황 인식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남 창원에 있는 한국전기연구원의 전기선박육상시험소(LBTS) 전경. 한국전기연구원 제공

◆3600t급 잠수함 장영실함도 KERI 도움 받아

전기선박 육상시험소(LBTS·Land Based Test Site)는 전기선박을 육상에서 시험하는 장소로 고부가 전기선박의 핵심기술 개발 및 관련 산업 지원에 필요한 기반 조성을 위해 필수적인 시설이다. 전기선박은 설계 과정에서 추진 시스템이 탑재된 후에는 해체와 성능 검증이 매우 어렵다. 특히 잠수함 같은 수중함은 바다 밑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전기추진 시스템을 선박에 탑재하기 전 육상에서 통합시험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LBTS를 갖추면 잠수함 및 전기선박의 건조기간 단축,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본다. KERI는 2015년 창원 본원에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LBTS를 완공했다. 국내 최초로 독자 설계·건조한 3000t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장보고-Ⅲ급)’ 건조에 기여한 바 있고, 최근에는 ‘장보고?Ⅲ Batch?Ⅱ’ 1번함인 장영실함 진수에도 LBTS가 큰 역할을 했다. KERI 관계자는 “LBTS는 잠수함 및 차세대 함정 등 국방 분야를 넘어 전기추진 차도선 등 민간 여객선 분야까지 기술 개발을 확대, 미래 전기선박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핵심 설비”라고 말했다.

 

전고체전지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이온을 전달하는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화재나 폭발 위험성이 낮은 고체로 대체한 것이다. 안전성이 높아 온도 변화나 외부 충격을 막기 위한 장치나 분리막이 따로 필요하지 않아 전지의 고용량화·소형화·형태 다변화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체전해질은 액체전해질 가격의 100배에 이르고 있어 전고체 이차전지의 조기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KERI는 이러한 고체전해질을 저비용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3가지 기술(용액형, 공침형, 습식밀링형)을 개발했다. 용액형은 최적 합성을 가능하게 하는 첨가제를 통해 낮은 순도의 저렴한 원료(출발물질)로도 성능이 뛰어난 고체전해질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특수 습식합성법’ 기술이다.

공침법은 고가의 황화리튬 사용 없이 간단한 용액 합성(One-pot) 과정만으로 고체전해질을 저가로 대량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성과다. 습식밀링형은 200도 이하 저온에서 양질의 고체전해질을 손상 없이 제조해 극판과 멤브레인에 최적 적용하는 기술이다. 해당 기술들은 각각 국내 다수 전문 기업체들에 기술 이전돼 고체전해질의 양산화가 준비되고 있다.

KERI는 공침법 등을 통해 전기차의 성능 한계와 화재 이슈를 해결하고 ‘이차전지 분야 세계 1위 대한민국’ 위상 공고화에 보다 큰 기여를 하겠다는 포부다. 김석주 연구부원장은 “기술 수요자의 눈높이와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연구과제를 발굴하고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연구성과를 창출하겠다”며 “이를 통해 우리의 성과가 국민의 안전하고도 풍요로운 삶과 부강한 대한민국을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김남균 KERI 원장 “미래 바꿀 ‘큰 기술’에 도전  기업 찾는 연구원 만들 것”

 

김남균(사진) 한국전기연구원(KERI) 원장은 “‘큰 기술’ 개발을 통해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 찾아오는, 국민과 함께하는 연구원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이 말하는 ‘큰 기술’은 국민 또는 인류에게 크나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거나 산업적으로 임팩트가 매우 커서 100억원대 이상 혹은 1000억원대까지의 기술료 수입이 가능한 기술이다. 쉽게 말해 ‘초대형’ 연구개발(R&D) 성과인 셈이다.

 

김 원장은 15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전기연구원은 지금껏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해 왔고, 특히 기업체 애로기술 지원 등을 통해 꾸준히 기술 로열티를 확보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 생산성이 얼마나 좋은지에 관한 지표는 연구비 투자 대비 기술료 수입 창출 비율이 얼마인가인데, KERI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재단의 연구 생산성에 필적할 만한 수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KERI가 지난 50년간 쌓아온 기술 수준이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방증하는 결과이다. 김 원장은 그럼에도 “국가·산업계에 더욱 파급력이 있고, 누리호 발사처럼 국민이 인정하는 초대형 성과 창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최소 5~7년 이상 혹은 최장 30년 가까이 걸릴 수도 있는 ‘큰 기술’ 개발 장려를 위해 직원들의 도전의식은 물론 흔들림 없이 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나 환경설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 팀이 거의 한 세대의 긴 기간 동안 팀원 전원의 총력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도전을 격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있으며 그런 도전을 직원 모두가 응원하는 문화를 가꾸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관 내부적으로는 철저한 심사를 거쳐 ‘큰 기술’에 도전할 3개의 팀(미래 모빌리티용 나노기반 고에너지 효율 경량와이어 기술, 전자기파 융합 방사선 암 치료 기술, 마이크로웨이브 유도가열 기술)을 이미 선정했고, 여러 제도적 지원을 펼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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