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자주국방 없는 중립은 무의미”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 세계뉴스룸

입력 : 2025-12-29 14:47:11 수정 : 2025-12-29 15:47:52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벨기에 수도 브뤼셀은 유럽연합(EU) 본부가 있어 ‘유럽의 수도’로도 불린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 주변국들의 지배를 받아 온 벨기에는 1830년에야 독립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네덜란드는 호시탐탐 벨기에를 탐냈다. 그러자 유럽 열강들이 1839년 영국 런던에 모여 회의를 열고 런던 조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벨기에는 ‘영세 중립국’으로 인정을 받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벨기에는 당연히 중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벨기에 영토를 통과해 프랑스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독일 제국은 그를 무시한 채 벨기에로 쳐들어갔다. 이는 25년 뒤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에도 똑같았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겪고 난 뒤 벨기에는 중립 정책을 포기하고 서방의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했다.

스위스 군대의 모습. 스위스는 모든 남성에게 18개월의 군 복무를 의무화한 징병제 국가다. 게티이미지뱅크

스웨덴과 핀란드는 202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확고한 군사적 중립의 태도를 취했다. 스웨덴은 2차대전은 물론 1차대전 당시에도 전쟁에 끼어들길 거부하는 등 중립의 역사와 전통이 제법 깊다. 반면 핀란드는 2차대전 후 이웃 나라 소련(현 러시아)의 강한 압박 속에서 서방과 거리를 둬야 했다.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으려면 소련과 서방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스웨덴·핀란드 양국의 안보 전략에 획기적 변화를 요구했다. 중립 노선으로는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스웨덴·핀란드 둘 다 나토 회원국이 되어 미국 등 서방의 보호를 받는 길을 택했다.

 

스위스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독립을 유지하고자 이 나라가 선택한 것이 바로 중립이다. 프랑스 제국 나폴레옹 황제가 일으킨 정복 전쟁으로 유럽 대륙 전체가 혼돈에 빠져 있던 1812년 스위스는 열강을 상대로 “우리는 중립국”이라고 부르짖었다. 덕분에 20세기 전반(前半)을 유혈로 얼룩지게 만든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모두 열외(列外)할 수 있었다. 1950년 한국에서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스위스는 중립을 이유로 의료진 파견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정전협정 체결 이후 그 실효적 이행을 돕고자 설치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NNSC)에 대표단을 보냈다. 지난 9월 방한한 스위스군 총사령관 토마스 쥐슬리 장군(육군 중장)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자리에서 “스위스는 중립국으로서 전 세계 평화와 안보 증진을 위해 지속적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9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토마스 쥐슬리 스위스군 총사령관(오른쪽)이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그 쥐슬리 장군이 퇴임을 앞두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스위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의 중립국 지위가 자동으로 국가 안전을 보장한다’라는 세간의 인식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쥐슬리 장군은 “역사적으로 중립국이 전쟁에 휘말린 사례는 적지 않다”며 “중립은 스스로 방어할 수 있을 때에만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위협으로 유럽의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국방력 강화를 위한 더 많은 예산 지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념 탓에 남북으로 갈라져 싸웠고 아직도 대결이 계속 중인 한국 사회에는 ‘중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주 국방 없는 중립은 무의미하다’라는 스위스 장군의 가르침은 울림이 아주 크다.


오피니언

포토

고아라 35세 맞아?…반올림 시절이랑 똑같네
  • 고아라 35세 맞아?…반올림 시절이랑 똑같네
  • 윤아 '아름다운 미모'
  • 수지, 거울 보고 찰칵…완벽 미모
  • 김혜준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