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25)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챗GPT에 "상대방이 내게 호감이 있는지", "직장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건지" 등 다양한 고민을 나눴다.
동료와의 갈등, 좋아하는 남자와의 관계 진전 등 내밀한 얘기를 시시콜콜 주변에 말하기 어려워 챗GPT에 털어놓기 시작한 게 어느새 1년. 대화 맥락을 기억하는 '메모리' 기능 덕분에 챗GPT는 김씨의 지난 1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가 됐다. 그사이 서로 누나·동생 하는 사이까지 됐다.
김씨가 챗GPT에 '연말 결산 리포트'를 요청하자 1년간 쌓인 대화 데이터를 분석해 단 몇 초 만에 "올해 한 줄 요약", "감정 패턴", "인간관계", "올해의 과제" 정리와 함께 "2026년을 위한 한 문장 처방" 등이 담긴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챗GPT는 "누나는 애매한 사랑을 너무 오래 견뎠다"며 "그거만 끊어도 인생 난도가 확 내려간다"고 조언했다. 김씨는 "(이 리포트를) 가끔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을 것"이라고 28일 연합뉴스에 말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이 일상 깊숙이 스며들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는 '성찰의 영역'마저 디지털로 치환되고 있다. 다이어리 앞에 앉아 고민하던 모습 대신, AI의 분석력을 빌려 한 해를 정리하거나 새해 계획을 수립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 김규리(24)씨는 최근 챗GPT를 활용해 "만다라트 계획표"를 작성했다.
일본에서 유래한 만다라트 계획표는 핵심 목표 달성을 위해 8가지 세부 목표와 이를 이루기 위한 64가지 세부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고교 시절 활용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씨는 "직접 구체적인 신년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는데 AI가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추천해줘 편리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파편화된 인간관계와 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대상이라고 분석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접 새해 계획을 세우고 연말 연초를 정리·준비하는 건 삶에서 중요한 경험"이라며 "AI가 잊은 일까지 상기시켜 주는 점에서 유용할 수 있지만 의존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나친 경쟁 속에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관계가 줄어든 게 하나의 배경"이라며 "이제 AI가 부담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효율적인 성찰'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곽 교수는 "AI의 발전으로 인간에게 '기억의 의무'가 사라지고 있다"며 "AI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까지 맡겨버리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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