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지단의 아들, 알제리의 손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관련이슈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2025-12-27 07:00:00 수정 : 2025-12-26 15:24:02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프랑스어에 ‘피에 누아르’(Pied-Noir)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검은 발’이란 뜻인데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정착한 프랑스인 등 유럽 국가 출신 백인들을 뜻한다. 프랑스는 1830년 알제리를 침략해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은 뒤 130년 넘게 지배했다.

 

프랑스에서 지중해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옛 프랑스 제국의 그 어떤 식민지보다 많은 프랑스인이 거주했다. 1920년대 어느 시점에 알제리 인구의 15% 이상이 피에 누아르였다는 통계도 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인을 차별하면서도 ‘알제리는 그냥 식민지가 아니고 프랑스의 일부’라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자국을 내지(內地)라고 부르며 ‘내선일체’(내지와 조선은 한몸)를 선전하면서도 실은 조선인을 차별한 것과 흡사하다.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의 아들 뤼카 지단.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축구 선수(골키퍼)인 뤼카는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할아버지의 모국인 알제리 국가대표팀 선수가 되는 길을 택했다. 알제리는 1830년부터 130년 넘게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고 1962년에야 독립국이 되었다. AFP연합

1954년 11월 1일 알제리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된 민족해방전선(FLN)이 알제리 내 프랑스 정부 기관을 일제히 공격했다. 이렇게 시작한 알제리 독립 전쟁은 무려 8년을 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허약해졌다고는 하나 아무튼 프랑스는 군사 강대국이었다.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는 50만명(프랑스 추산)에서 많게는 150만명(알제리 추산)에 이르는데, 확실한 것은 사망자 거의 대부분이 알제리인이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 있던 프랑스 식민지 대다수는 1960년 평화로운 방식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알제리는 프랑스와 처절한 전쟁을 치른 끝에 1962년에야 독립을 쟁취했다.

 

오늘날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겪은 국가들은 프랑스 중심의 국제기구 ‘프랑코포니’(Francophonie)에 가입해 활동 중이나 알제리는 회원국이 아니다. 1962년 알제리 독립 후 양국 간에 외교 관계가 수립됐고 오늘날 알제리에선 프랑스어가 공용어처럼 널리 쓰인다.

 

하지만 두 나라 간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후 과거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라고 인정했으나 사과를 하거나 배상을 약속하진 않았다. 지난 24일 알제리 의회는 130여년에 걸친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지배를 ‘국가 범죄’로 규정하는 한편 프랑스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법률안을 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이 현역 선수 시절인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을 당시의 모습. 지단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한 알제리계 프랑스인의 아들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53)은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민을 간 알제리계 프랑스인 스마일 지단(90)의 아들이다. 알제리에 정착한 프랑스인을 뜻하는 피에 누아르는 아니지만, 어쨌든 부자가 둘 다 알제리와는 뗴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지단의 아들 뤼카 지단(27)도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다. 그런데 뤼카가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알제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했다는 소식이 25일 전해졌다.

 

그는 “우리 가족은 알제리 문화를 지니고 있다”며 “할아버지도 내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알제리가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함에 따라 뤼카는 월드컵 무대도 밟을 예정이다. 옛 제국주의 국가들이 남긴 유산이 참으로 복잡다단하는 점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오피니언

포토

윤아 '아름다운 미모'
  • 윤아 '아름다운 미모'
  • 수지, 거울 보고 찰칵…완벽 미모
  • 김혜준 '깜찍한 볼하트'
  • 강한나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