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횡단, 22000㎞(윤영선, 스타북스, 2만5000원)=공직에서 은퇴한 저자가 지난해 7, 8월 두 달간 러시아부터 터키까지 2만2000㎞ 자동차 여행을 다녀온 체험기다. 저자는 인생 2막의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동해에서 출발해 러시아, 몽골, 중국,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조지아, 튀르키예로 이어지는 대장정을 다녀왔다. 여행보다는 고행에 가까운 시간을 지나며 저자는 고대 동서 간의 문화와 종교의 통행로가 된 실크로드와 8세기 신라의 승려 혜초가 진리를 찾아 떠난 길을 직접 만난다. 독자에게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라는 낯선 여행법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은퇴 이후의 삶을 즐기는 저자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덤’으로 준다.
쓰레기 기억상실증(임태훈, 역사공간, 2만5800원)=성균관대 국문과 교수인 저자는 우리가 매일 쓰레기를 버리며 수행하는 이른바 ‘망각의 의례’에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시민들은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문 앞에 내놓는다. 이후 이 행위가 광역 매립장·소각장·하수처리장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망각 인프라’와 결합해 어떻게 거대한 무지의 회로를 구축하는지 조명한다. 망각 인프라는 불결하고 불편한 것들을 우리의 시야에서 신속히 격리한다. 그 덕분에 대중은 소비주의적 일상에 안온하게 머문다. 수도권 매립지 사용은 대안 없이 연장되고 연간 1억7000만t의 폐기물이 쏟아지지만, 이러한 통계 수치는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 되지 못하고 증발한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매혹의 괴물들(나탈리 로런스, 이다희 옮김, 푸른숲, 2만3000원)=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고질라, 골룸 등 할리우드에서 ‘괴물’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소재다. 괴물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인간의 ‘불안’, ‘비이성적인 감정’ 등이 괴물에 투영돼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괴물을 알면 “우리의 내면세계, 그리고 실재와 마주하는 방식에 대한 숨겨진"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석기 시대부터 21세기까지 서양사 속 중요한 괴물들을 되짚어 보며 괴물이 어떻게 인류 정신에 침입해 일상 속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 조명한다.
선생님, 저 신고할 거예요(신서희·김유미, 카시오페아, 2만원)=사이버 명예훼손, 딥페이크, 언어폭력, 신체폭력….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양상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정교해졌다. 교실 안에서 벌어진 작은 다툼, 실수 혹은 관계의 균열조차 곧장 ‘학폭’이라는 단어와 ‘신고’라는 절차로 이어진다. 장학사와 변호사인 저자들은 “요즘의 학교는 그야말로 ‘신고의 일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고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라며 “대화의 끝이 ‘너 신고할 거야’로 마침표가 찍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개탄한다.
새로 쓰는 택리지(김동식, 푸른길, 3만5000원)=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는 현대에 들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책이다. ‘과연 어디에서 살 것인가?’라는 이 책의 주제는 좋은 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택리지’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쓴 인문기행서다. ‘택리지’는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라는 네 기준으로 거주지를 평가한 실학 고전이다. 저자는 이 네 축을 그대로 존중하되, 인구 이동·지역 소멸·부동산 격차·환경 위기 같은 동시대의 문제를 대입한다.
인정빌라(김봄, 민음사, 1만8000원)=소설가 김봄의 첫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집이다. 작가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다세대주택 인정빌라를 중심으로, 그 안에 사는 아홉 가구의 이야기를 연작소설로 풀어낸다. 언제라도 떠날 것처럼 캐리어를 정리하지 않는 애인과 사는 지연의 집, 사랑했던 이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안고 배낭 하나만큼의 짐만 갖고 사는 박하의 텅 빈 집, 딸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하루하루 분투하는 석희와 병철의 집. 인정빌라에 사는 이들의 저마다 고단한 삶에 따뜻한 시선을 드리우면서도 그들의 삶을 마냥 감싸주지만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인 이기심과 과오도 숨김없이 드러내며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간상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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