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목표 세우고 우선순위 설정 필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단연 정부 정책이다. 주거, 복지, 교육과 안전까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정책의 결과물이다. 문제는 정책이 늘어나고 복잡해질수록 국민의 삶이 반드시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정책이 많아질수록 서로 충돌하고 엇갈리는 장면이 반복되며, 이때부터 행정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현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혼선과 엇박자 행정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정책모순이 구조적으로 누적된 결과다. 개별 정책이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목표와 기준이 한꺼번에 작동하면서 정책 전체의 효과를 갉아먹는다. 국민이 느끼는 피로감은 이 지점에서 커지고, 정책에 대한 냉소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정책모순은 종종 단일 정책 내부에서 발생한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2050 탄소중립 정책이 대표적이다. 석탄과 원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동시에, 전기요금 인상은 억제하겠다는 목표가 함께 설정됐다. 에너지 전환이 발전 단가 상승을 수반한다는 점은 예견된 사실이었지만, 요금 통제로 이를 흡수하려다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가 누적됐다. 친환경 전환과 요금 안정이라는 두 목표가 하나의 정책 틀 안에서 충돌하며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정책 간 조정 실패로 인한 모순도 적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한 대출 규제 강화는 시장 과열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청년과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좁힌다는 부작용도 있다. 주거 안정을 목표로 한 정책과 가격 억제 정책이 같은 시간대에 작동하면서 정책 효과는 반감되고, 현장에서는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개별 정책의 취지가 타당하더라도, 큰 그림 속에서 조율되지 않으면 정책은 쉽게 누더기가 된다.
이 같은 정책모순이 반복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정치·행정 환경은 정책의 장기적 일관성을 약화시킨다. 각 부처는 자신의 소관과 성과를 우선시하고, 조정은 비용과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피된다. 여기에 예산 제약과 법·제도의 경직성, 이해관계자의 압력이 더해지면 정책 충돌은 예외가 아니라 구조가 된다. 특히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 행정문화는 협력을 가로막고, 정책 학습과 개선 기회마저 차단한다.
정책모순을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목표의 명확화와 우선순위 설정이다. 모든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정책일수록 설계 초기 단계에서 정책 간 영향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정책 시뮬레이션을 강화하고, 감당할 수 없는 목표 조합은 과감히 조정해야 한다. 부처 간 협의 역시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조정 권한과 책임이 분명한 협의 구조를 통해 정책 충돌을 사전에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시행 후에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통해 환경 변화에 맞게 정책을 수정하는 유연성도 회복해야 한다.
정책모순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방치하느냐, 관리하느냐다. 성숙한 정부의 역량은 더 많은 정책을 내놓는 데서 드러나지 않는다.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일관된 방향을 유지하는 데서 드러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분명하다. 정책의 양이 아니라 질, 속도가 아니라 조정 능력에 답이 있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24/128/20251224514544.jpg
)
![[세계포럼] 금융지주 ‘깜깜이’ 연임 해소하려면](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24/128/20251224514519.jpg
)
![[세계타워] 속도 전쟁의 시대, 한국만 시계를 본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24/128/20251224514427.jpg
)
![[한국에살며] ‘지도원’ 없이 살아가는 중국인 유학생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24/128/20251224514493.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