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갈등·불협화음 만들어내
李의 업무보고 공개 질책 논란
취임 때의 다짐 이어가길 기대
대통령에 대한 정부 부처들의 업무보고를 TV 생중계로 보면서 개인적으로 ‘부족주의’를 떠올렸다. 대통령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업무보고에서 “로켓 발사를 매년 하도록 하라”고 한 대목에서 믿음직했으나, 다른 부처 업무보고에서 특정 기관장의 업무 관련 질문을 하며 다소 혹은 많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는데, 필자 눈에 띈 사람은 전 정권이 임명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필자는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했다면 그들을 저렇게 대접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부족주의 정서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드워드 윌슨(하버드대학교 생물학자) 책 ‘지구의 정복자’를 꺼내 보았다. 윌슨은 부족주의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소속 부족을 가져야 한다. 혼돈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부족은 그에게 자신의 이름 외에 또 하나의 이름과 사회적 의미를 제공한다. 그럼으로써 그에게 환경은 덜 혼란스럽고 덜 위험한 곳이 된다.”
부족주의는 인간이 오랜 구석기 시대를 살아남는 데 기여한 진화적 특질이다. 집단에 속하면서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 결과 부족주의 특질은 사람의 유전자에 각인되었다. 우리는 소속 집단을 통해 위안과 자부심을 느끼고,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불안에 휩싸인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안도하고, 세상을 겉돌면 위태로움을 느낀다. 윌슨이 말한 ‘부족’은 오늘날에는 다른 많은 말로 치환될 수 있다. 국가, 종교, 학교, 정당, 고향…. 한국의 3대 모임이라고 얘기되는 호남향우회, 해병대전우회, 고려대학교 교우회가 부족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조직이다.
부족주의라는 오래된 본능이 현대사회에서 무해하게 작동하는 영역이 스포츠다. 국가대표 경기 때 한국인은 경기장에서 혹은 TV 앞에서 붉은 악마가 되는데, 이때 우리는 부족주의 정서를 만끽한다. 축구선수 손흥민 경기를 우리가 찾아서 즐기는 이유가 그가 나와 같은 ‘부족’이기 때문이다. 부족주의는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하고 가슴 뛰게 만든다.
현대의 정당 제도는 부족주의 본능을 제도적으로 재구성한 장치다. 편 가르기와 진영 간 경쟁은 부족주의 본능이 제공한 인지적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다른 부족과 창과 칼을 손에 들고 싸우는 대신, 말과 언어의 화살을 경쟁 집단에 쏘자는 새로운 규칙을 발명한 거다.
문제는 부족 정서가 때로 갈등 혹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부족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심리학자는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고 한다. 내집단 편향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면 내로남불이나 이중잣대쯤 된다. 나와 우리 편에게는 관대하고, 남과 상대집단에 대해서는 엄격한 인지 편향이다. 내가 약속 장소에 늦으면 ‘길이 막혀서’이고, 남이 늦게 오면 ‘상황’ 탓이 아니라 그의 특징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부족주의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된다. 부족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고 인지과학, 진화심리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는 역지사지, 즉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기가 잘 안 된다는 거다.
대통령도 국토교통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를 받으러 나오면서, 오늘은 부족주의 정신을 살려서 내 부족이 아닌 사람을 질책해야지 하고 다짐하지는 않았을 거다.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부족주의 본능이 살짝 혹은 세게 튀어나왔을 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대통령은 ‘부족주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지난 6월4일 대통령 취임 선서 뒤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이재명정부는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고, 그보다 몇 년 앞선 2022년 1월6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주요 정책분야 대토론회’에서는 “유능한 인재라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기용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초심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내로남불, 이중잣대, 내집단 편향은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유산이다. 한국사회의 분열이 극심한 요즘, 특히 우리가 곱씹어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골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이는 우리 사회를 파멸적인 상태로 몰아갈 수 있어, 불안불안하다. 그 밖에도 부족주의를 우리가 뒤로해야 할 이유는 많다. 국경선이라는 경계를 넘어 인류가 손을 잡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우리 앞에는 산처럼 놓여 있다. 기후위기와 지구 생태계 보전, 인공지능 리스크 관리 문제, 빈곤과 난민 문제가 그것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구석기 시대 유산에 발목을 잡혀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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