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게임 명멸 속, 굳건한 전설로
아이템 사고 논란 등에 비판받기도
내년 4월 신규 지역 ‘신라’ 등 추가
우리나라에 ‘온라인 게임’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96년 4월, 대한민국 게임사의 물줄기를 완전히 뒤바꾼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은 글로벌 게임 거물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작은 벤처 개발사에 불과했던 넥슨이 2년여의 산고 끝에 ‘바람의나라’를 세상에 내놓으면서다.
당시 게임의 문법은 명확했다. 혼자 CD를 사서 즐기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바람의나라’는 서버라는 ‘마을’에서 다른 이용자라는 ‘동료’와 함께 호흡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게임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집어놓은 파격적인 혁신이었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고구려와 부여를 중심축으로 삼은 이 게임은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숱한 게임들이 명멸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한국 게임 산업의 살아있는 전설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기 ‘바람의나라’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믿기 어려울 만큼 단순했다. 해상도는 낮았고 사냥은 반복적인 작업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보급과 함께 PC방이 급격히 확산하던 시절, 이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 현상’이었다.
친절한 가이드 시스템이 없었기에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비법’이 공유됐고, 사냥터에 다람쥐가 부족해지면 너나 할 것 없이 “넥슨은 다람쥐를 뿌려라!”라는 문장을 화면 가득 도배하며 운영자와 실시간으로 밀당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항의를 넘어 개발자와 이용자가 직접 호흡하던 온라인 게임 초창기만의 독특한 소통 방식이자 상징적인 문화로 남았다.
또 소위 ‘네임드’라 불리는 스타 플레이어가 등장하면 그를 보기 위해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었다. 오늘날의 ‘인플루언서’ 문화가 이미 30년 전 고구려와 부여의 영토에서 싹트고 있었던 셈이다.
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소는 실제 사회 시스템을 모방한 정교한 소셜 콘텐츠였다. 그중에서도 ‘혼례 시스템’은 이용자들에게 가상 세계 속의 또 다른 자아와 소속감을 부여하는 핵심 장치였다. 이용자들은 예식장에서 전통 혼례복인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식을 올렸다. 혼례를 마치면 얻게 되는 ‘사랑호출기(삐삐)’는 배우자가 있는 곳으로 즉시 이동할 수 있는 권능이자 애정의 상징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모니터 속 인연이 현실의 사랑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언론에는 게임 속 ‘사이버 부부’가 실제 부부로 발전한 사례가 보도됐다. 당시 넥슨은 ‘온라인에서 늘 함께 다니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어서 오프라인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음성 채팅 대신 화면 가득 “@@@@@@@@”를 입력해 목소리를 높이던 시절, 그 투박한 소통 방식 속에는 지금은 느끼기 어려운 아날로그적인 향수가 짙게 배어 있다.
물론 30년의 세월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기술적 한계로 인한 아이템 복사 사고나 사행성 논란으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고, 그래픽 리뉴얼 과정에서는 과거의 ‘도트(Dot)’ 감성을 고수하려는 올드 유저와 현대적 편의성을 요구하는 신규 유저 간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제 ‘바람의나라’는 30주년을 향한 새로운 대장정을 준비하고 있다. 넥슨이 24일 선공개한 업데이트 계획에 따르면, 내년 4월 신규 지역 ‘신라’와 신규 직업 ‘흑화랑’을 필두로 한 방대한 규모의 콘텐츠가 추가된다. 최대 레벨은 950까지 확장되고 9차 승급이 도입되어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예정이다.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거대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람의나라’는 이제 게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하굣길의 설렘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인연을 만난 장소였던 이 게임은 이제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디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비록 최전선의 화려한 게임은 아닐지라도 한국 온라인 게임의 문법과 커뮤니티 문화를 기록해 온 살아있는 아카이브로서의 가치는 대체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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