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대량생산과 엘리베이터
고열 견디는 내화기술 합작품
비극 부르는 화재·테러 경계를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 가나 고층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다. 새로 짓는 아파트는 대부분 30층을 넘으니 이제 50층은 넘어야 고층 아파트 축에 든다. 아파트를 한 층이라도 더 높게 지으려는 움직임은 경제적인 요인 때문이다. 정해진 땅에 많은 세대수를 넣으려면 층수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예전에도 건축물을 높이 짓고자 한 인간의 욕망이 있었지만, 그 동기는 지금과는 달리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이었다. ‘높은 곳’은 곧 종교적으로는 신성을, 세속적으로는 권력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는 광활한 평야에 벽돌을 쌓아 ‘지구라트’라는 수십 미터 높이의 인공 산을 신전으로 조성했다. 당시 권력자는 자신이 신의 명령으로 도시를 다스린다고 주장했으므로 지구라트 건설은 왕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화강암을 통째로 다듬어 세운 오벨리스크가 유행했는데 이집트인들은 오벨리스크를 ‘굳어진 태양광선’이라 여겼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상징으로 파라오가 신에게 바친 기념비이며, 거대한 돌을 세우는 능력은 파라오의 권력과 부, 기술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고딕 성당에는 높은 첨탑을 세웠는데, 이는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5년 완공된 황룡사 구층목탑을 들 수 있다. 황룡사 구층목탑은 최대 80m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건축물이었다. 한국의 탑은 제일 꼭대기 층 위에 철주(鐵柱)를 꽂아 수직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모두 높은 곳을 향하고자 한 종교적 열망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들 고층 구조물은 상징을 시각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건축물은 아니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고층 건축물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철의 대량생산으로 비로소 출현했다. 그전까지 철은 철광석을 숯으로 재련했기에 매우 귀한 재료여서 무기나 농기구를 만드는 용도에 그쳤다. 1709년, 영국에서 코크스를 이용한 재련법이 개발됨으로써 철을 값싸게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건축물에 철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코크스로 생산한 철은 용광로에서 쇳물을 주형에 부어 만든 주철이었는데, 주철은 누르는 힘에는 강하지만 당기는 힘과 충격에는 약해 그 성질이 유리와 같았다. 철은 탄소 함유량이 많으면 강하지만 깨지기 쉬운데, 주철은 탄소 함유량이 높고 불순물이 많아 충격에 약하다.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주철을 가열하여 단조 가공으로 탄소를 제거해 당기는 힘에 강한 연철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어 품질이 균일하지 못했다. 고층 건물의 등장은 1856년 이후 탄소 함유량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불순물을 제거해 누르는 힘과 당기는 힘에 모두 강하고 품질이 균질한 강철이 탄생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균질한 품질의 재료라야 구조계산이 가능해 건축물의 안전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철을 이용한 철골구조는 정밀한 구조계산을 통해 100층 이상 쌓을 수 있다. 또한 강철은 현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철근콘크리트의 핵심이다.
강철이 고층 건물을 세울 수 있게 했다면 엘리베이터는 고층 건물에서 사람이 생활할 수 있게 했다. 1854년 미국인 엘리샤 오티스가 ‘안전한’ 엘리베이터를 발명하기 전까지 높은 층은 ‘계단 지옥’이어서 가난한 사람과 하인들의 공간이었다. 기록상 최초의 엘리베이터는 기원전 236년경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도르래와 로프를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이 장치는 왕과 귀족을 위한 것이었고 노예의 노동력으로 작동했다. 로마의 콜로세움에도 이 장치가 있었다. 산업혁명기인 18~19세기에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공장과 광산 등에 널리 사용되었으나 로프가 끊어지면 즉시 추락해 사람이 타기는 너무 위험했다. 오티스가 로프가 끊어져도 추락하지 않는 안전장치를 발명함으로써 비로소 고층건물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아자르는 그의 소설 ‘자기 앞의 생’ 첫 페이지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혹독함을 주인공 어린이 모모의 입을 빌려 묘사하고 있다. “먼저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 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로자 아줌마는 육중한 몸뚱이를 오로지 두 다리로 지탱하며 매일 오르내려야 했다. 그녀는 유대인이라서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할 처지가 못 되지만….”
고층 건물이 성립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화재에 대한 대책이었다. 아무리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편리하고 안전한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화재가 발생했을 때 안전하게 피난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강철은 섭씨 500도의 온도에 달하면 그 강도가 반으로 줄어들며 온도가 올라갈수록 강도가 급격히 떨어져 붕괴하고 만다. 그러므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피난하고 소방관들이 불을 끌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화재 발생 시 구조체가 일정 온도 이하로 일정 시간 이상 유지되게 하는 ‘내화기술’이 개발되었다.
지난달 홍콩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해 100명이 훨씬 넘는 사람이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다. 고층 건축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화재다. 밀집도가 높은 만큼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또 다른 문제는 테러다. 2001년 9월11일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테러로 붕괴하는 참사가 있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이데올로기 갈등의 분출구가 된 것이다. 이제 상징성이 강한 고층 건물의 재해에는 국제 정치와 사회의 불안요인까지 포함해야 할 듯하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으니 너무 높은 건물을 좋아할 일이 아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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