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환자에게 3차병원 즉 상급종합병원은 ‘내가 원하면 갈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 요양급여 규칙에 따른 요양급여의뢰서, 일명 진료의뢰서에는 수신병원 기재란이 없다. 그래서 동네의원에서 발급받는 진료의뢰서는 백지수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고, 환자는 이를 갖고 전국의 유명 3차병원 어느 곳에나 갈 수 있다. 이러한 진료의뢰서는 의료 전달체계를 무너뜨리고 3차병원에 가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의 진료 현장에서 이런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일본의 진료의뢰서에 해당하는 요양정보제공서, 이른바 소개장에는 최상단에 수신인인 소개처 의료기관, 담당 진료과, 심지어 담당 의사명까지 적게 돼 있다. 동네의원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보고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특정 병원의 특정 의사를 지정해서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즉 환자가 A병원 앞으로 써준 소개장을 들고 마음이 바뀌었다며 B병원으로 갈 수 없다. 수신병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환자에게 의뢰서를 써주기 전 의사나 원무과 직원이 상급병원의 지역의료연계실에 직접 연락해서 ‘우리 환자 OO씨를 보낼 테니 진료 시간을 잡아달라’고 병원 대 병원으로 직접 연락할 수 있다. 그러면 상급병원에서 예약을 잡아주며, 의료기관 연락을 대비한 예약 쿼터를 따로 두기도 한다.
만약 이 절차를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일본은 특정 기능병원, 일반병상 200개 이상의 지역의료지원병원 및 지정된 소개수진중점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소개장이 없거나 소개장에 적힌 병원이 아닌 곳을 환자 임의로 찾으면 몇몇 예외를 빼고 2022년 인상된 선정요양비 규정에 따라 초진은 최소 7000엔(한화 약 6만6000원)을 내야 하며 이는 진료비와 별도로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위 금액은 최소 규정이기 때문에 병원이 더 높게 정할 수도 있다. 도쿄대병원은 1만3200엔(약 12만5000원)을 받고 있다.
선정요양비는 초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더는 받을 필요가 없어 다른 의료기관에 소개장을 써주었음에도 계속 해당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면 그때마다 최소 3000엔(약 2만8000원)의 선정요양비를 부담해야 하고, 정규 외래시간이 아닌 때에 진료를 받으면 시간 외 선정요양비도 부담한다. 도쿄대병원은 재진 선정요양비 4680엔(약 4만4000원), 시간 외 선정요양비 1만1000엔(약 10만4000원)을 각각 책정하고 있다. 소개장 없이 초진이나 재진이면서 시간 외 외래를 받는다면 관련 선정요양비가 합산된다.
앞으로도 어느 3차병원에 갈지 환자의 선택에 따르게 해 모두가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하면 꼭 그 병원에 가야 할 필요가 있는 환자는 적시에 진료받지 못할 수 있다. 진료의뢰서 서식을 개정해 수신병원 기재를 의무화하고, 의사가 직접 예약하는 핫라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반드시 해당 병원에 가야 할 필요가 있는 환자가 아니라면 그러한 선택에 대해서는 비용을 부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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