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광주 군·민간 공항을 무안국제공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통합 공항의 명칭을 ‘김대중 공항’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20일 국제공항협의회(ACI)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는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서 공항 명칭을 짓는 사례가 흔하다. 주로 국가지도자를 비롯한 정치 인사, 문화·종교적 상징성이 있는 사람의 이름을 사용한다.
미국에는 존 F. 케네디 국제공항(뉴욕),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내셔널 공항(알링턴), 조지 부시 인터컨티넬털 공항(휴스턴) 등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항부터 서부극 영화배우로 유명한 존 웨인이나 코미디언 밥 호프, 전투기 조종사 에드워드 오헤어, 재즈의 전설 루이 암스트롱 등의 이름이 공식 명칭으로 포함돼 있다. 지역 이름을 딴 공항을 지역 주민들과 정치적 논의를 거쳐 인물명으로 개정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프랑스의 18대 대통령 샤를 드골의 이름을 딴 파리 샤를 드골 공항과 영국 리버풀의 존 레넌 공항,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 스페인 마드리드 아돌포 수아레스 바라하스 공항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아시아에도 인도 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뭄바이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국제공항, 필리핀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등이 있다.
공항에 유명 인사 이름을 넣는 것은 국제적 인지도와 상징성 측면이 크다. 공항은 해외에서 자국을 찾는 관광객에게 첫 관문 역할을 하는 만큼 국가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담은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 특정인을 차용한 성격이 크다. 예를 들어 존 F. 케네디는 냉전 시대의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간디는 비폭력과 독립의 정신을 상징하기 위한 의도로 공항명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공항 이름에 인물명이 정식 명칭으로 채택된 사례가 전무하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서 공항 이름을 짓자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무산됐다.
가덕도 신공항이 현재처럼 입지가 확정되기 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남부권 신공항’ 검토를 공식 제안해 사업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점을 높이 사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찬반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3년 8월 경남도의회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의 명칭을 ‘이순신 국제공항’으로 지정하도록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대구·경북권(TK) 신공항의 경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박정희 국제공항’으로 명명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대선후보였던 2021년 9월 처음 제안했고, 지난해에도 경북도의회 일각에서 추진 요구가 나왔다. 하지만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등이 나서 “우상화 작업에 공항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김대중 공항’을 포함해 앞으로도 당분간 국내에서 특정인의 이름을 딴 공항이 탄생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직 대통령 등 정치인의 실명을 적극적으로 쓰는 미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우리나라는 근현대사 인물에 대한 역사적 합의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개국공신과 독립 영웅이 명확한 외국과 달리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 군사정권, 민주화 등을 연이어 겪으면서 권력이 수시로 이동했기 때문에 역사적 변곡점의 주요 인물들이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며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외에 근현대사 인물을 공항 이름으로 쓰자고 하는 순간 정치적 논쟁이 생기고 지역감정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해외에서 사람 이름을 딴 공항으로 개정할 때는 정치권이 제안하는 형태가 아니라 대부분 풀뿌리 민주주의 형태로 지역 커뮤니티에서 여론이 형성된 이후 정치적·행정적 절차가 뒷받침되는 식”이라며 “미국처럼 연방제 국가이거나 지방정부가 강한 권력을 가진 나라에서는 공항 지역 연고가 있는 유명인으로 합의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공항명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인을 지목하기에 부담이 큰 구조”라고 설명했다.
1992년 인천국제공항 착공 당시에도 대국민 명칭 공모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공항’이었다. 신공항 건설본부로 접수된 명칭 1644건 중 101건이 세종이었고, 인천은 8위에 그쳤다. 하지만 인천시민들의 강력한 요구와 관할 지역의 이름을 우선하는 통례 등을 근거로 현재의 명칭이 확정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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